마르셸 뒤상 - 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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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마르셸 뒤상 L.H.O.O.Q
1919년 마르셀 뒤샹(1887~1968)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복제화에 연필로 수염을 그려 넣었다. 미술사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에 이 같은 장난기 어린 행동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더군다나 그림 밑에는 L.H.O.O.Q.라는 수수께끼 같은 글자를 달았는데, 약자처럼 보이는 이 글자는 불어로 엘.아슈.오.오.뀌.로 발음하며, 불어 문장 Elle a chaud au cul를 소리 내어 읽은 것처럼 들렸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라는 뜻으로 성적으로 흥분되어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신비한 미소로 전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모나리자에게 연필로 수염을 그려 넣어 우스꽝스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성적인 암시가 들어간 제목까지 덧붙인 이 그림은 수많은 논쟁과 더불어 이후 《모나리자》를 모델로 한 풍자화의 시초가 되었다. 뒤샹은 명작이라든가 천재성 혹은 창조력에 대한 사람들의 숭배를 과감하게 파괴하는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반예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반예술(Anti-Art)은 1914년 뒤샹이 만든 용어이다. 이는 미술에 대한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개념으로 뒤샹은 그의 실험적인 작품을 통해 반예술의 개념을 실현시켰다. 《L.H.O.O.Q.》에 앞서서 그는 1917년 뉴욕에서 열린 제1회 앙데팡당 전시회에 R.Mutt라고 사인한 남성용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품하기도 했다. 물론 이 작품은 전시에 거절당했다. 그리고 1919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사후 400년이 된 해에 맞춰 《L.H.O.O.Q.》라는 불경스러운 제목의 작품을 발표한 것이다.
뒤샹은 그리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회화의 부정을 실천했지만, 이는 현대미술을 진일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뒤샹 이후 반예술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사조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경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폭 넓게 사용되고 있다.
알 듯 모를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그 그림 앞에 끝없이 줄지어선 관람객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런 유명세에 질투라도 느낀 걸까? 이 고귀한 얼굴 위에 누군가 낙서처럼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었다. 이런 장난(?)을 친 인물이 바로 마르셀 뒤샹이다.
1919년 뒤샹은 파리의 길거리에서 가 인쇄된 싸구려 엽서를 구입했다. 그리고 거기에 검은 펜으로 수염을 그려 넣었고 아래에는 알파벳 대문자로 ‘L.H.O.O.Q’라고 적었다. 그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elle a chaud au cul’이 되어 ‘그 여자의 엉덩이는 뜨겁다’는 말이 된다. 콧수염을 그려 넣은 것도 모자라 외설적인 농담까지 적어놓은 뒤샹의 의도는 무엇일까? 한낱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이 사소한 행위가 현대 미술에 끼친 파급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전통과 권위를 이렇게 단번에 무력화하고 조롱한 예는 역사상 없었다. 공교롭게 1919년은 다 빈치가 타계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였고 파리 시민들은 서양 문화의 절정기에 화려하게 꽃을 피운 다 빈치의 업적에 열광했다. 그런데 뒤샹이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찬양하고 숭배하는 다 빈치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용감하고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뒤샹의 이런 모험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혁명가이자 선구자로 불리는 뒤샹은 돌발적인 행위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시대와 장르, 형식과 내용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인물이었다. 또한 인상주의부터 입체주의와 미래주의를 거쳐 다다이즘에 이르기는 다양한 경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며 아방가르드를 구현한 인물이다. 이러한 뒤샹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정신은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가 되었다.
마르셸 뒤샹
1912년 항공 공학 박람회를 관람한 뒤 뒤샹은 친구인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말했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 뒤샹이 ‘이제 회화가 망했다.’고 말한 그 자리에서 새로운 미술의 탄생은 예감되었다.
이제 뒤샹을 필두로 하는 현대 미술이 그 문을 열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회화 작품에 익숙한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우리 주위에 아주 익숙한 ‘물건’들이 아주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뒤샹은 이전 세대의 화가들과 완전히 다른 화가로 살았다. 고흐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화가가 손으로 보여주는 예술에 대한 세상을 바꾸어버렸다. 그의 오브제들은 낯선 것이었다. 시장에서 구해온 남성용 소변기를 세워놓고 샘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비난과 폭언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게 뭐야, 미쳤나? 이제 예술은 망했군’. 이런 반응과 더불어 전통적인 방법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는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열정적인 반응이 터진다.
그는 화가의 손을 해방시켰다. 그의 오브제 작품들과 소변기, 유리, 나무 상자와 같은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산업화 시대로 도래한 물질주의 시대 대량생산 시대에 예술가로서 탄생한 것이다. 마르셀 뒤샹을 만든 것은 현대 자본주의, 대량 생산 시대이기도 하다.
대량생산하는 물질주의 시대의 상품들을 예술가가 창작하는 오브제로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