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살다간 음악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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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살다간 음악인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다.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보다 한순간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 바로, 너바나라는 세계적이었던 밴드의 보컬이었던 커트코베인의 유서에 남아있던 말이다. 199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커트코베인,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세상에 울려퍼지고,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은 아직도 수많은 기타키드들의 손에 연주되고 있다. 물론, 너바나라는 밴드는 모든 세대가, 그가 경멸하던 부류의 사람들 조차 좋아하는 밴드였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말 할 수 없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뮤지션들은 요절한 경우가 매우 많다. 3J산화라고 하는 사건만 봐도 그렇다. 지미핸드릭스, 재니스조플린, 짐모리슨이 모두 절정기, 27살을 넘지못하고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바로 그 사건이다. 지미핸드릭스의 경우 최고의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로 아직도 너무나 유명하고, 재니스 조플린도 브루스 보컬로써 대중들이 사랑하던 보컬이었으며 짐 모리슨도 히피들의 우상이라 할 정도로 대단한 뮤지션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27살을 넘지 못하고 요절했다는 것은 아직도 수수깨끼로 남아있기 까지하다. 더군다나 앞에서 이야기했던 커트코베인도 27살을 넘지 못하고 죽자, 27살에 천재 뮤지션이 죽는다는 괴담이 생길 정도였다.
세계적인 밴드 레드제펠린의 드러머 존 본햄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술을 마시고 자다가 구토로 인해 질식사해버린 그의 죽음은 세계적인 밴드의 드러머로써는 조금 안타까운 죽음이다. 32살의 존본햄의 죽음에, 세계적인 밴드 레드제펠린은 "존 본햄 없는 레드제펠린은 없다."라는 말과 함께 정상에서 해체하게 되었다.
이런 의문의 죽음이나 단순 사고에 의한 사고가 있다면, 타살에 의한 죽음도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알고있는, 음악역사에 큰 획을 그은, 한때 예수와 누가 더 유명한지 설문조사에서 아쉽게 진 밴드 비틀즈의 존 레논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유명한 밴드인데다가 비틀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존 레논이다보니, 모두 아는 사실이겠지만, 팬에 의해 총에 맞아 사망한 그의 최후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미래까지 팝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를 암살한 마크채프먼이 그를 암살한 후에 태연하게 읽고있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이 그 사건으로 인해 더 많이 팔려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쉬운 죽음에는 병에 의한 것도 있는데, 그것은 아직도 치료법이 나오지 않은 AIDS로 인해 죽은, Queen의 프레디 머큐리이다. 대중 역사상 처음으로 AIDS로 인해 사망한 그는, 아직까지도 팝 역사상 최고의 보컬로 불릴 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었고, 최고의 카리스마로 아직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한편의 오페라 같은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TV에서 OST로 많이 쓰이고 있다. 모두들 야심만만 노래로 알고있는 Dont stop me now, OCN에서 들어봄직한 Under pressure 그 외에도 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 등을 통해 우리는 프레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불꽃처럼 살다가 음악인이라고 하면 얼마 전에 사망한 마이클 잭슨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팝의 황제라는 그는 폴 매카트니에 이어 가장 재산이 많은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망 전까지 성형부작용과 아동성폭행혐의로 많은 오해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지만, 사망 후 그의 명성은 다시 되찾아 진듯하다. 음악적 혁명과 무대 퍼포먼스부터 시작해서 뮤지션으로써 세계 평화를 위해 공연을 하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가 문워크하는 그 모습부터 시작해서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heal the world를 부르는 모습까지 아직도 우리의 기억속에서 그는 팝의 황제로 남아있다.
이렇게 한순간 불꽃처럼, 나비처럼 살다간 뮤지션은 서양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윤심덕씨가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윤심덕씨의 경우에는 사랑하는 김우진씨와 같이 정사하였다. 이 후에 그전에 녹음되었던 사의찬미가 많은 사람들에게 팔렸고, 후에 영화화 될 정도로 희대의 사건이었다. 비록 지금 시대에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
반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뮤지션으로는 역시 김광석씨를 꼽을 수 있다. 아직도 군대를 가는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혹은 장난삼아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김광석씨는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가수라 생각된다. 특히 남자들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고운 목소리는 아니지만 아버지나 형이 불러주는 노래처럼 따뜻하면서도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더군다나 그의 노래는 하나의 소설처럼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과, 그 이야기가 우리의 인생과 너무나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그가 너무나 일찍 우리를 떠낫다는 것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유재하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앨범을 작사 작곡 연주 노래까지 전부한 그의 애틋한 사랑은 정말 슬프게하고, 그의 해맑은 얼굴도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한다. 유재하 가요제가 생길만큼 그의 다재다능한, 천재 같은 모습으로 인해 천재는 요절한다는 괴담이 맞게 생각되게 한다.
신기한 것은 유재하의 음악 동료이자 호형호제하던 김현식은 유재하가 떠난지 3년후 같은날에 사망했다. 그의 노래 내 사랑 내곁에는 얼마전에도 동명의 영화에서 OST로 쓰이면서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듀스의 김성재도 한국 대중음악에 한획을 긋고 의문만 남기고 요절한 뮤지션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X재팬의 히데와 ZARD의 사카이 이즈미도 같은 맥락으로 우리들을 아쉽게 하였다.
이들은 모두 벚꽃처럼 찬란하게 흩날리던 그들의 모습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천재이면서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나 밴드의 멤버들은 요절을 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그들의 죽음 이후에 그들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거나 그들의 노래가 더 애틋하게 들리도록 했다는 것은 무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몇 년전 유니가 자살했을때도 유니가 죽기전 녹음한 앨범이 네이버 검색순위에 오른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그들이 어떤 고통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약물복용이나 자살로 인한 죽음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앞으로는 뮤지션들이 이런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나질 않길 바란다. 우리의 가슴속에서 우리를 떠난 뮤지션들을 영원히 잊지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