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가 말한 자연상태란 바람직한 사회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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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루소가 말한 자연상태란 바람직한 사회상인가
한국인들은 유난히 평등한 것을 좋아한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라는 옛말이 존재하며 고교평준화와 같은 사회 제도에서도 이런 면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평등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은 서양보다 몇세기 정도 늦은 편이다. 오랜 세월동안 한반도를 지배해왔던 유교의 사농공상의 계급관이 사람들의 의식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탓이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18세기 무렵부터 있어왔다.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1775년에 발발한 미국 독립 전쟁을 들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의 주도층이었던 부르주아 계급에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 바로 루소, 홉스, 로크가 주장한 사회 계약설이다. 홉스와 로크는 계약을 통해 형성된 사회나 국가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루소는 이와 반대로 이전의 자연상태에 대해 호의적이었으며 인간의 사회나 역사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역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했다. http://chang256.new21.net/board/board.php?db=201&no=2224 “홉스와 로크는, 정치사회를 형성하면 인간의 자유나 사회적 평화가 확립된다는 낙관론이지만, (중략) 오히려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문명상태로 진전한 당시 프랑스 봉건사회를 점점 타락하고 있는 사회로 보았다. 따라서 홉스나 로크처럼 낙관론에 설 수 없었다.”
루소는 인간은 편의를 위해서 계약을 통해 사회를 형성하였는데, 오히려 사회제도에 인간이 종속되는 등, 여러 가지 모순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우선 자연상태에서 지니고 있던 육체적인 강인함을 잃었고, 교육을 통해서 사회에 순종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고, 교육에 있어서는 개인의 필요에 따른 교육이 아닌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또한 국가나 역사가 발전할수록 교양있는 자와 교양이 없는 자의 격차를 확연히 벌어졌고 생활양식의 차이를 낳게 되었다. 이렇듯 루소가 부정했던 모순된 사회에 대비되는 자연이 갖는 특징은 대체 무엇인가?
서론.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자연상태로의 회귀를 주장한 루소
루소에 의하면 자연상태에서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보다는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본래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그 무엇보다도 생존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학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야수로부터 재빨리 몸을 피할 수 있는 민첩성, 사냥할 도구를 만들어내는 손기술 등, 루소는 이를 두고 “자연은 인간에게 스파르타의 법률을 부여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자연적으로,혹은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익히게 됨으로서 성장해나간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자연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질서가 없는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타인을 함부로 믿을 수 없는 상태이며 이 때문에 집단을 이루어 큰일을 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비록 자연상태에서는 계급적인 면에서는 평등했을지는 모르지만, 이 평등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동등할 수 없고 힘이나 체격의 차이란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육체적인 조건이 뛰어난 자는 분명 한 가족을 이끄는 존재였을 것이고 서로 다른 가족간의 투쟁 및 경쟁을 통해 한 무리의 지도자로 거듭났을지도 모른다. 즉,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강자와 약자가 탄생하고 이것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낳았을 것이다. 국가의 출현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다른 면에서 살펴보자면 자연상태란 평등하지만 실상은 질서와 문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루소의 입장에서는 당시 사회구조의 대립되는 개념으로 막연히 생각해낸 것이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의 원시사회, 즉, “자연 상태”인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 평등한 사회인 “자연 상태”를 추구하는 방안은 과연 어떤 것이 있었을까? 과격한 방법으로는 사회 구조를 파괴하는 것, 즉 혁명을 통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외 소극적인 방법으론, 사회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생존을 이루고 살아가는 방법, 즉, 무정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 두 방법 모두 완전한 평등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프랑스 혁명이 이루어낸 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이 귀족에서 부르주아로 바뀌었을뿐이고 불평등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역사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불평등의 정도는 줄어들고, 신분상승의 기회도 다소 늘어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두번째로 언급한 무정부주의자가 되는 것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방안이다. 무정부주의란 결국엔 개인적인 차원의 방안일 뿐이고, 현실회피일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체제의 생산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루소가 이상적으로 여긴 “자연상태”란 사실상 실현불가능한, 꿈같은 세계인 것이다.
본론 1. 자연상태에 대한 인식의 한계 - 필연적으로 깨질 평등관계
본론 2. 사실상 실현불가능한 자연상태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은 스파르타인과 비슷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스파르타에도 사회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육체적인 능력에 따라 사회적인 계급이 나뉘었다. 스파르타를 다스리는 정통 스파르타인과 비교적 하위계급으로 노예와 여자 등이 존재했던 것이다. 한편 정부의 형태를 놓고 많은 현인들이 고민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루소보다 훨씬 이전의 사람인 플라톤 또한 그러한 사람 중 하나이다. 플라톤은 당시 살고있던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듯 하다. 루소가 갈망했던 평등한 사회였던 아테네 역시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중우정치로 타락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루소는 국가의 유지를 위해 사회구성원이 역할을 분명히 견지하고 그 역할에 맞는 기능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가의 지도는 단 한사람의 현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 『플라톤의 국가론』, 집문당, 2005, 248-328page
어쩌면 이것은 스파르타의 사회에서 영감을 얻은 주장일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보면 계급의 존재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는 대목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문명하에서 계급이 사라진 사회란 도저히 존재할 수 없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사회에도 자본주의로 인한 계급이 발생하였고 그에 따라 불평등이 생겨났다.
자본주의 구조하에서도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바로 그러한 움직임이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하에서 산업 생산은 모순점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 모순의 첫번째는 생산의 무정부성, 즉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한 생산이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생산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생산과정에는 자본가외에도 각 분야의 숱한 노동자나 기술자가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현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이윤의 재창출해 나갈 것이고 이 와중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부의 소유정도는 갈수록 벌어지고 결국엔 소비자층인 노동자의 구매능력의 한계와 산업생산품의 과잉생산이 동시에 맞물려 큰 문제를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 대공황인 것이다. 강신준, 『자본론의 세계』, 풀빛, 2001. 366-377page
이런 가설을 펼친 마르크스는 경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붕괴되고 국가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는 사회주의의 도래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론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공정성보다는 사리사욕에 움직이는 법이다. 때문에 사유재산을 인정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가장 발전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역시 정치제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사실상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절대적으로 평등한 세상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강신준, 『자본론의 세계』, 풀빛, 2001
플라톤, 『플라톤의 국가론』, 집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