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생명윤리철학 기사스크랩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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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철학 기사스크랩 비평

인도에서 젊은 남녀가 교제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여성은 그녀의 부모, 오빠, 삼촌은 둘의 결혼을 반대했음에도 마을을 떠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해치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말을 믿고 결혼식 다음날 친정집에 돌아왔다가 남편과 함께 살해당했다. 이는 ‘명예 살인’으로 종교적, 관습적 이유로 이슬람권에서 성행하지만 종종 발생하는 인도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녀의 부모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딸을 때려죽이고 사위를 참수했음에도 “어떤 후회도 없다.”고 진술하였다.
이 사건을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딸과 사위를 죽인 부모, 가족을 욕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보수적인 관습, 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현대와 뒤 떨어지는 살생의 원인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반인륜적인 문화 때문이다. 지역사회 고유의 문화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보존되어야 하고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실일지라도 시대가 변화하면서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 있다. 남존여비사상 등이 그에 해당되는데 각 지도층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그들의 사회를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다. 통제할 것은 강하게 통제하고 구성원들의 생각, 사회의 분위기를 바르게 조성하는 것 또한 그들의 역할이다. 법으로 금지했다고는 하지만 매년 수백 명이 이런 명예 살인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는 사회적 분위기, 사상이 아직까지도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곧 지도계층이 그들의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단순히 법을 세워 두는 것만이 아닌 캠페인 등의 좀 더 직접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음에도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를 방치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비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력한 통제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힘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학령기 인구는 총 713만명, 그 중 행방이 전혀 파악되지 않는 아이들이 28만명이다. 이는 2012년 당시 학령기인 아이들만 따진 수치이고 학령기를 넘어선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은 수이니 실제적인 수는 훨씬 커지게 된다. 이 28만명 중에는 각자의 방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은둔형 외톨이, 아르바이트생으로 생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연간 1% 미만이 학업을 중단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활동가들은 한 해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학업을 그만둔 아이들까지 누적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학교 밖을 맴도는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아이들이 왜 학업을 중단 하는가’이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테지만 그 중에서 바꾸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한다. 단순히 그 숫자를 파악하고 분석만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을 토대로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여야 바로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게 된다.
또 여러 이유로 교육받아야 할 시기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후에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오게 되더라도 그들이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남들과 똑같이 학습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에 부담이 되는 환경도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쟁쟁한 학벌, 스펙들 사이에서 한 글자라도 더 배우고 더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어찌 보면 굉장히 잔인한 사회이다. 공부하고 점수를 따는 것만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가는 지금, 28만명 이상의 아이들은 점점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행방을 알 수 없다하여도 이 나라 어딘가 에서는 분명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골칫덩어리로 생각하고 방치하기 보다는 기회를 주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살아가는 데에 있어 기본적, 기초적 지식은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기초적 지식은 학령기가 시작될 때, 많은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하기 이전에 교육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세워야 한다. 그래서 후에 학업을 중단하더라도 어떠한 방식이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기초를 배우고 난 후에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도록 하여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감소하도록 해야 한다. 이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울 시간을 보장받고도 사회에 나갔을 때 설 자리가 있는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은 유약하고 유연한 존재이다. 어른들이 잘 이끌어주고 만져준다면, 울타리를 벗어난 후에도 충분히 각 개인만의 역량을 뽐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더 늦기 전에 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후에 우리 사회는 부담을 한가득 안고서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것이다.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없던 일로 돌아갔다. 사후피임약은 현재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사전피임약보다 건강에 덜 해롭고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긴급성, 접근성의 이유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후피임약을 복용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해 피임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종교계, 의료계와의 마찰 때문인데 여성단체는 ‘피임이 낙태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종교계에서는 ‘피임도 낙태의 일부이다.’라고 주장했다. 남성피임도구인 콘돔은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생활용품인데 반해, 이러한 결정은 여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라고 여성단체들은 반발했다.
여기에서 집중하고 싶은 곳은 바로 종교계의 주장이다. 종교계에서 피임도 낙태의 일부라고 보는 것은 그들의 가치관으로써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가치관은 다르다. 어느 누구도 남에게 자신의 것을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종교계가 그런 식의 주장으로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화를 막는 것은 자신들의 주관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단체만 해도 그들의 가치관, 주장은 피임이 낙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을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충분히 있으며 종교든 국가든 그것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또 다른 것은 ‘피임’에 관한 것이다. 피임은 우리의 역사, 성과 함께 오랜 시간동안 이어져 왔다. 피임이 시작되면서 성교와 임신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과거보다 자율적으로 임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단체는 이러한 피임 덕분에 낙태가 감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낙태와 피임을 따로 보는 것이 맞는 지가 의문이다. 앞에서 종교계가 주장한 것처럼 낙태와 피임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임 또한 낙태와 함께 감소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피임 방법들이 완벽한 것이 아닐 지라도 피임을 함으로써 누구라도 임신의 걱정 없이 성교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쌓이다 보면 곧 사회적으로 무분별한 성교가 증가할 수도 있다. 무분별한 성교는 낙태, 미혼모 문제뿐만이 아닌 의학적, 질병적인 문제도 가져올 수 있다. 타당한 이유로 적절한 피임은 유용하고 또 필요하지만, ‘피임’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면 성교를 너무 가벼이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는 피임도 어느 정도 선을 두어 사람들이 신중함을 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긍정적 측면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