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축도 강경애의 인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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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식민지 조선의 축도 강경애의 인간문제
궁핍한 시대를 증언하고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는 작가로서의 도정
1930년대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최소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쓴 글을 발표할 지면을 얻을 수 있는 관계 망이 필요했다. 강경애는 다른 여성 작가와는 성장 배경이 달랐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극한의 궁핍이란 작가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된다. 남성 작가들에게서 궁핍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다. 궁핍을 딛고 자기를 세울 수 있는 기회란 드물었고 여성들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정체성을 세우는 성찰의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공식적인 기록물에 여성의 흔적을 남길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강경애는 드물게 하층 여성의 목소리를 공식기록, 식민지 시대 하층 여성의 대변자였다. 충돌의 현장인 간도에 살면서 항일 무장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모를 목격하고 고통과 정당성을 식민지 조선에 전하는 것을 작가로서의 의무로 삼았다.
강경애는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가 죽은 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에서 성장했다. 춘향전에서 한글을 깨치고 한글 고전소설을 독파하자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투어데려다 소설을 읽게 했고, 동네에서 ‘도토리 소설 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0살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애원과 간청으로 겨우 보통학교에 입학했고 절박한 심정으로 눈치 공부를 했다. 1921년 평양 숭의 여학교에 입학한 뒤 추석에 성묘하는 것도 미신이라는 규제에 항의하다가 퇴학당했다. 그 후 동덕 여학교에서도 잠깐 공부했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에는 가난한 어머니가 있었고, 똑똑했던 여학생 강경애는 병든 몸으로 돌아왔다. 소리 없는 비난에 심신의 고통을 겪으며 강경애는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29년말부터 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신문독자투고형식이었으며 프로문학과 민족주의 문학 사이에서 절충주의 문학 이론으로 성가 올리던 양주동과 염상섭을 비판하고 프로문학을 지향하는 평론을 발표했다. 그리고 집안문제, 연애문제로 고민하던 청춘남녀가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에 헌신한다는 내용인 단편소설 파금모녀간의 관계 통해 봉건적 안습과 성적경제적 억압으로부터 여성해방을 도모한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이 있다.
고향에서 작가 수업을 하던 무렵 강경애는 장연군청 직원으로 부임한 장하일을 만나게 된다. 문학세계를 이해하고 제일 먼저 강경애의 작품을 읽고 서로토론, 조언하는 좋은 독자였다. 장하일의 조혼한 아내가 나타나면서 장연에서 더 이상 살기 곤란하게 되자 한동안 인천에서 지내기도 하다가 1931년 6월 간도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시기 인천에서의 노동 경험은 인간문제를 쓸 때 귀중한 자산이 된다. 강경애는 중간에 서울이나 장연을 왕래하지만 주로 간도에 거주하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한다.
강경애의 모든 소설은 간도에서 쓰여 졌다. 강경애 보다 앞에는 최서해가 이후에는 안수길이 간도에서의 체험을 자신들의 문학기초로 사용했다. 여성 작가의 경우 강경애가 유일하다. 다른 여성 작가들은 대부분 조선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에 살며 잡지사나 신문사의 기자로 문단의 중심에 있으며 부수적 활동에 더 바빴던 경우가 많았던 것을 비교하면 강경애의 특성이 드러난다. 문단의 벽두지만 항일 투쟁의 중심지인 간도에 살면서 창작에 전념한 것이 강경애를 예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긴장을 주었다. 그러한 긴장감으로 당대 어느 작가보다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
1930년 식민지 자본가, 농민, 노동자의 대립 구조 속에서 농민과 노동자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들의 조직적 투쟁을 현실성 있게 그린 우리 근대소설사에서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인 장편소설 인간문제를 발표했다. 간도 지방 조선 민중의 궁핍한 삶과 그런 삶을 강요하는 억압세력에 맞서 싸우려는 항일운동 세력에 관심가지면서 그들을 형상화하는데 노력했다. 민중의 감정을 반영한 소금, 모자, 번뇌같은 작품에서 1930년 초의 전성기 이후 항일 무장 조직이 점차 간도 지방에서 패퇴하면서 전향해 가는 세태와 남겨진 가족의 고난을 그렸다. 어둠은 간도 공산당 사건으로 사형 당한 청년의 누이동생을 내세워 국내 모든 사람이 침묵해 넘긴 사건에 대해 주의 환기시켰다. 국내에서 일제의 군국주의와 검열도 강화되면서 민족과 계급 이야기에서 벗어나 일상의 궁핍과 감정의 갈피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했다. 지하 촌은 궁핍의 극한지점을 세밀히 묘사했다.
1938년 신병이 악화되고 1939년 장연 경성제대병원에서 치료에 노력하였다. 하지만 병이 악화되어 귀가 먹고 앞도 못 보게 되었다. 1944년 4월 26일 한 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며 숨졌다. 일제시대 보기 드문 여성 작가이며 살아생전 저널리즘의 각광받지 못하고 작품집 한 권 가지지 못하고 병고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눈감은 여성작가였다. 1949년 장하일은 자신이 부주필로 있던 ‘노동신문사’에서 인간문제를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강경애는 근대 작가 누구보다도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작가이다.
식민지 조선 사회의 절망과 희망 ­ 인간문제
인간문제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은 황해도 장연과 인천부두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는 간도에서 역사와 현실 변혁에 대한 튼튼한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현실을 반영하였다. 인간문제에서 주인공은 소작인의 딸로 지주에게 성폭행 당하고 방적공장의 여공이 되었다가 폐병으로 죽는 ‘선비’이고 선비의 일생은 ‘식민지 조선 농민의 딸’의 가장 대표적인 삶이다. 식민지 시대 친일 지주와 소작농민의 모순, 공장 감독과 공장 노동자의 모순양상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이다. 전반부는 원소전설을 안고 있는 황해도 마을을 배경이며 정덕호의 횡포와 농민들의 비참한 삶이 펼쳐진다.
선비의 아버지는 덕호의 심부름으로 가난한 집에 돈을 받으러 갔다가 너무 비참한 꼴을 보고는 오히려 가지고 있던 돈을 쥐어 주고 돌아왔다는 죄로 덕호에게 맞아 죽는다. 선비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어머니까지 죽자 덕호 집에 살러 간다. 용현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첫째‘는 어머니가 매춘을 호구책으로 삼는 것에 불만품고 소작이라도 부치기를 원한다. 첫째는 순박하면서도 불뚝하는 성질이며 선비를 좋아해 선비 어머니의 병에 좋다는 소태 뿌리를 밤새 캐어 주면서도 드러내 놓고 말도 못한 첫째지만 어머니의 매춘에 거칠게 비난한다. 용연 마을의 지배자 덕호는 1930년 조선인 지주들이 노골적으로 일제와 야합해 농민을 수탈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식민지 부루조아의 전형이다. 아들 얻겠다는 일념으로 소작농의 딸을 첩으로 데려오고 선비까지 유혹한다. 저항한 농민들은 가두었다 내보내면서 생색을 내고, 면장이 되어 식민지 정책을 찬양하고 법을 내세워 농민을 위협하는 인물이다.
신철은, 옥점이 에게 끌렸으나 옥점의 집 에서 일만 하는 선비를 보면서 선비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어느 한편으론 마음 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고, 사회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아 노동하는 선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에 거칠어진 ‘시커먼 손’이 선비의 손 일리 없다고 생각하는 분열된 의식 가졌다. 도서관에서 고시 준비를 하는 동료를 경멸하고 부잣집 딸인 옥점과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반말하고 노동운동 하러 인천에 간다. ‘첫째’는 용연 마을을 떠나 인천 대동방적공장의 여직공이 된다.
소설 후반부는 식민지 근대화의 관문인 인천이 공간배경이 된다. 부두 노동자가 된 첫째와 방적공이 된 선비를 중심으로 살인적 노동을 강요당하는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