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

 1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1
 2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2
 3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3
 4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4
 5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5
 6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6
 7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7
 8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8
 9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9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독일 과학사] 국가와 과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 과학혁명기 이전의 과학과 국가

2. 본론
1) 과학과 국가 관계의 시작 - 베이컨 사상과 과학단체
2) 국가와 과학 관계의 진전
(1) 독일 과학의 성장
(2) 과학의 미국식 발전
3) 과학과 국가 관계의 심화
(1) 거대과학
(2) 핵개발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 과학혁명기 이전의 과학과 국가

과학과 국가관의 관계를 시기별로 고찰해 볼 때, 17C 이전에는 국가권력이 과학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였다. 즉 국가권력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17c 중반 왕립학회, 왕립과학아카데미가 설립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에 이루어졌던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에 의한 무세이온 설립(기원전 280년) 등의 지원은 왕이 한 명의 후원자로서 개인적으로 행한 지원이었을 뿐 이를 국가 정책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국가 정책에 의한 영향이 존재하지 않을 때도 과학은 사회와 항상 연관되어 있었다.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했던 아랍 사회에서는 고대 그리스 과학을 그 성격에 맞춰 수용하였다. 과학 문화와 활동은 사회 내에서 일정한 안정과 후원체계를 요구하므로 로마나 이슬람 세력의 쇠퇴는 그 과학문명의 쇠퇴를 야기했다.
하지만, 17c이전 즉 국가 권력이 과학이 사회적으로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국가 권력과 과학은 긴밀히 연결되었다고 보기는 힘들고, 이를 반대로 말하면 아직은 과학이 기술과 연결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발전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없었고 그만큼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2. 본론

1) 과학과 국가 관계의 시작 - 베이컨 사상과 과학단체

중세 시대의 과학은 모두가 알다시피 철학의 시녀,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신학의 시녀에 불과했다. 이러던 과학은 과학 혁명을 통하여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15, 16세기를 통해서 건축가, 기술자, 장인 등과 같은 실제적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지위가 향상되고 실제적 기술을 보다 유용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사람들의 태도 변화가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실제적․기술적 지식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이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베이컨이다. 베이컨은 당시 유행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철학과 플라톤주의를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비생산적이라며 비판하였다. 그리고 실제적․기술적 지식을 공개적이고 객관적이며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도움을 준다고 해서 옹호하였다.
그러나 베이컨은 지금까지 실제적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 올바른 방법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주장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귀납적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귀납적 방법은 필연적으로 실험과 관찰을 수반하게 되었는데, 이는 곧 경험주의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는 곧 과학 혁명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베이컨은 그의 저서 [New Atlantis]에서 과학자들의 이상향으로서 ‘살로몬의 집’(Salomon's House)을 제시하였는데, 여기에는 과학 연구의 발전을 위해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베이컨의 주장이 담겨있다.
참고문헌
1. 새 독일사 : 이민호
2. 독일대학과 과학의 역사 : 장수영
3. 독일 근세 경제사 : 김광수
4. 과학사 개론 : 김영식
5. 독일제국대학시기의 대학과 학문 : 변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