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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럽사] 에게문명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에게문명의 발견
(2) 미노아 문명
(3) 미케네 문명
본문내용
(1) 에게문명의 발견
1870년 이전까지는 에게 해의 섬들과 소아시아 해안에서 수백 년 동안 거대한 문명이 번성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고도로 발달한 에게 문명을 최초로 파헤친 사람이 ‘하인리히 슐리만’이다. 소년시절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애독하면서 언젠가 거기에 나오는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리라고 결심했다. 궁핍한 청년시절을 보냈지만, 타고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이윽고 사업가로 성공한 슐리만은 트로이 연구를 위해 사업에서 은퇴하고 모아 놓은 전 재산을 쏟아 1871년부터 소아시아 북서부 연안(현재의 터기 영토)에 있는 히사르리크 언덕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발굴 결과, 그 언덕에 9개 층의 유적이 겹겹이 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도시들 중에서 두 번째를 트로이라고 단정했다. 이로써 슐리만은 호메로스 서사시가 신뢰할 만한 역사자료라는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고 서사시 가운데 언급된 다른 성체들의 유적들로 여겨지는 곳들을 차례로 발굴해나갔다. 1876년에는 미케네, 그로부터 4년 뒤에는 오르코메노스, 다시 4년 뒤에는 티린스에서 각각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최후로 발굴을 기획한 곳은 크레타섬 북부 해안에 위치한 크노소스 왕궁 터였다. 그러나 발굴지의 땅 매입, 출토품의 소유권 등을 놓고 땅주인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 계획을 단념하고 말았다.
훗날 그를 대신해 그곳을 발굴한 사람은 영국의 고고학자 아더 에반스였다. 1900년부터 발굴 작업에 착수한 그는 장려한 왕궁 터나 왕비를 위한 작은 별궁 등의 미노아 문명을 찾아냈다. 이탈리아 발굴단이 섬 남쪽의 파이스토시와 아기아. 트리아다를 파헤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22년부터는 프랑스가 북쪽 해안의 말리아를 발굴하기 시작해 크레타 각지와 그리스 본토에서 유럽 각국의 발굴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발굴 결과, 에게 해역에 한때 휼륭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E.M.번즈 박상익옮김 소나무
시공사
신선희 청아
Herry C. Boren 이석우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