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인물] 남명 조식의 생애와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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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사인물] 남명 조식의 생애와 학파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남명 조식의 생애와 정치·사상적 배경
ⅰ. 남명 조식의 생애
ⅱ. 남명 조식의 정치적 배경
ⅲ. 남명 조식의 사상.
Ⅲ. 남명학파의 형성과 몰락
ⅰ. 남명학파의 형성
ⅱ. 남명학파의 몰락
Ⅳ. 나오며

본문내용
남명 조식의 학문은 마음으로 도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고 치용(致用)과 실천을 앞세웠다. 시비를 강론하거나 변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학도를 위하여 경서를 풀이해 준 것은 없고, 다만 자신에게서 돌이켜 구하여 스스로 터득하게 하였다. 그 정신과 기풍이 사람을 격려하고 움직이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를 따라 배우는 자들의 공부가 열리는 일이 많았다. 경과 의에 바탕한 남명의 사상은 경상우도라는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사림파의 학문세계를 추구하였는데, 특히 김해의 산해정, 합천의 계부당. 뇌룡정, 산청의 산천재 등지는 그의 사상적 기저를 발현하는 대표적인 교육장소였다. 남명학파의 지역적 범위는 대체로 진주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김해, 밀양, 청도, 북쪽으로는 창녕, 현풍, 성주, 서쪽으로는 산청, 함양, 하동 및 남쪽으로는 사천, 고성 등지에 미쳤다. 남명 당시 경상도를 크게 네 개의 계수관으로 구분할 때 진주목 관내의 전 지역과 경주부 관내의 밀양, 청도, 창녕, 영산, 현풍, 그리고 상주목 관내의 성주, 합천, 고령, 초계가 남명학파의 지역적 범위에 들어간다고 하겠다. 남명당시 그의 사우, 문인의 분포 지역과 그의 족적이 미친 범위는 경상우도를 벗어나기도 했지만, 17세기 후반 이래 남명학파의 지역적 범위는 대체로 위에 열거한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산해정 시절에는 경의와 뇌천 및 경전공부를 통해 학문을 쌓아 나갔고, 계부당.뇌룡정 시절에는 『심경』, 『근사록』을 통한 경전공부와 경전과 관련된 주제를 설정함으로써 敬義의 교육을 심화시켰다. 산천재 시절에는 사서 및 제경전과 강학주제를 설정함으로써 경의를 실천하는 공부로 나아가게 했다.
남명의 문하생은 처사로 지내기도 하고, 정계에 나가기도 하고, 의병장이 되기도 했다. 최영경, 정인홍, 곽재우는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남명정신을 투철하게 계승하였다. 초야에 물러나 있었으나 당대의 현실을 ‘급구(急求)’로 인식하며 벽립천인의 기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실천의지를 드러내며 민본주의에 역설하기도 했다. 특히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창의 기병한 것도 남명문도에 의해서였다. 이 같은 남명문도들의 의병활동은 남명의 경의사상이 내재적 발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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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명, 「16-17C초 남명문인의 형성과 강학」, 『南明學硏究論叢』제9집, 남명학연구원, 2001.
허권수, 『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을 하는가』, 한길사, 2001.
최석기, 『나의 남명학 읽기』, 경인문화사, 2005.

하고 싶은 말
미흡하지만 나름 열심히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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