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사] 알바알토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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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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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Modernism of Scandinavia
알바 알토의 생애를 통한 알바알토의 건축
알바알토의 작품경향
대표적 작품
그 외 사진들
본문내용
Modernism of Scandinavia


스칸디나비아는 북유럽 국가 즉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칭하는 것으로, 이 국가들은 인접한 지역적 조건 때문에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의 특성을 지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서 서로 결속되어 있다. 이러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장인에 의한 수공예 전통이 일상생활 깊게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산업교류가 활발치 않아 디자인의 물결이 늦게 도입되었고, 유럽의 모던 디자인 양식을 추구하였지만 그들 독특한 풍토와 국민성으로 인해서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모더니즘 디자인을 구축하게 되었다. 즉, 1930년대부터 국제주의 양식의 주요 원칙들은 이들 국가의 전통적 유산과 특유의 생활환경 속에 도입되어 새로운 이념이 담긴 디자인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특징은 첫째, 목재의 사용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디자인이다. 북유럽은 수목이 70%를 차지하는 목재국이고 이러한 자재를 이용한 실내문화와 가구는 소박하고 간결하게 디자인되었다. 둘째, 모더니즘의 단순화에 민족적 특성을 도입한 것 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유럽의 근대화 운동이 성행 할 때도 공예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근대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특유의 자연환경과 국민성이 스며들어 독특한 모던디자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스칸디나비아 양식은 낮보다 밤이 긴 그들의 기후조건으로 인하여 실내에 머무는 시간을 많이 갖는 생활 환경 속에서 특히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주거공간에는 전통적 공예정신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생활용품-가구, 도자기, 유리, 금속제품, 직물 등-들이 배치되었다. 세번째로 인본주의에 의한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목재 그 자체의 재질을 최대한 살린 수공예 가구들은 인체공학에 의거한 표준화된 규격으로 대량 생산되어, 우수한 성능과 자유스럽고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경제성까지 고려되어 일반 대중들도 쉽게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구들은 독일의 차가운 금속튜브 가구에 비해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런 양상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공통점으로,1930년 스톡홀름 전시회에 소개된 스웨덴 디자인은 ‘Good-living’ ‘Swedish Modern’(2차 세계대전 후 디자인, 건축, 가구, 공업디자인 분야에 스웨덴의 전통과 지역, 풍토의 특성을 근대적 수법으로 탄생시킨 디자인 경향.)이란 용어로 사용될 정도로 그들의 신선한 감각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 이렇듯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북유럽의 전통성이 현대인의 생활감각과 어우려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Hugo Alvar Hendrik Aalto
(1898~1976,Finlandia)









알바 알토의 생애를 통한 알바알토의 건축
1898년 2월 3일 러시아령 핀란드 쿠오르타네에서 태어나 1976년 5월 11일 헬싱키에서 잠든 알바 알토는 핀란드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가구 디자이너이다.

-초기작업
1916년~1921년 핀란드 오타니에미에 있는 헬싱키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나 핀란드 독립전쟁에 참가하면서 잠시 공부를 중단했다. 1921년 대학을 졸업한 뒤 유럽을 여행했고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중부 핀란드의 유바스쿨라에 건축설계사무소를 열었다. 1927년에 투르쿠로 사무소를 옮겼고, 에리크 브뤼그만과 함께 일하다가 1933년 헬싱키로 이주했다. 1925년 학교 친구였던 아이노 마르시오와 결혼하여 5년동안 함께 휨목실험을 하였고, 1928년 아르텍(Artex) 이라는 가구 회사를 설립한다. 1929년에 알토는 재료를 적층판과 합판으로 바꾸어 투르쿠 근교의 가구회사 기술부장인 오토 코르호넨과 함께 베니어의 집합이나 성형합판의 한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실험들을 통해 1930년대 획기적인 의자디자인-「No.41」(1931~32)과 외다리의자「No.31」(1932)-이 만들어졌다. 이 의자는 파이마오 요양소 계획의 일환으로 같은 시기에 디자인되었고, 이들 디자인은 재료가 합판으로 교체되는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알토를 최고의 디자이너로 만들어 주었다. 라미네이트 목재를 이용한 시험 작품
1927, 1928년은 알토에게 중요한 해였다. 그는 3개의 중요한 건물을 위탁 받아 설계함으로써 핀란드에서 가장 진보적인 건축가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 받게 되었다. 이 건물들은 투르쿠에 있는 신문사 건물인 투룬 사노마트 빌딩과 파이미오에 있는 결핵 요양소, 비푸리(지금의 비보르크)에 있는 시립 도서관이다. 결핵 요양소와 비푸리 시립 도서관은 설계경기에서 당선한 것으로, 당시 핀란드에서는 공공 설계경기가 흔한 일이었다. 이 3가지 건물 모두는 기능적이고 솔직한 설계에 역점을 둔 작품이며 역사적 양식을 참고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 건물들은 1920년대 핀란드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단순화된 고전양식을 뛰어넘어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독일의 바우하우스 교사(1925~26)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