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사] 호족연합정권설의 비판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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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사] 호족연합정권설의 비판적 검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호족연합정치란?
2.제도적 측면을 통한 호족연합정치운영의 검토
(1)정치제도의 운영-광평성, 내봉성
(2)군사제도의 운영-순군부, 병부
(3)지방제도의 운영-귀부, 기인제도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호족연합정치란?
우리는 흔히 고려 국초의 정권 형태를 호족연합정권이라고 부르고 있다. 왕권이 호족과 연합하여 정권을 유지하였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호족세력이 권력구조에서 도저히 배제될 수 없을 정도로 그 세력이 강대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특성들을 토대로 호족들을 통해 고려국가 성립의 의의를 찾는 연구시각이 ‘豪族聯合政權說’(이하 연정설)이라 할 수 있다. 고려는 후삼국의 분열과 통일전쟁을 거치면서 성립하였다. 이러한 연정설은 고려초기의 정치체제가 국왕중심의 집권적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고 각지에서 대두한 호족들의 연합이라는 형태를 위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점들은 고려초기에 국왕권이 호족에 대해 일방적인 우의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이하 비판론) 이는 호족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려초기의 정치제제를 연정설이라는 시각에서만 파악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그 대신 국가 또는 국왕주도의 정치체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춘다. 연정설이 호족에 무게 중심이 있다면, 비판론은 국왕 그리고 국가에 무게의 추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제도적 측면을 통한 호족연합정치운영의 검토
(1) 중앙정치제도의 운영-광평성, 내봉성
1) 연정설
최근 궁예정권의 중앙정치조직을 독립해서 다룬 연구에 의하면 광평성의 기능이나 역할이 호족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구로써 설치되었고 결국 광평성체제는 궁예정권이 호족들에게 상당한 양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가 중대사에 대한 호족들의 의견을 수렴하였던 기구로 해석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사문제를 담당하였던 내봉성이 궁예의 근시기구로써 중시되었던 점을 들어 광평성체제는 궁예와 호족세력과의 타협의 소산이었다고 하였다. 신호철은 왕건이 궁예정권 초기의 광평성체제를 이어받아 호족의 의견을 존중하는 제도를 더욱 강화하여 호족연합정치를 일층 발전시켰다고 본다. 왕건은 즉위 후 6일 만에 취한 인사조처에서 중앙관부의 서열을 새롭게 하였다. 즉 1위인 광평성과 2위인 병부 사이에 내봉성과 순군부를 두었다. 태봉에서는 내봉성이 9위였으며 순군부는 기록에 보이지 않았던 관부로 이러한 정치적기구의 개편을 호족연합정책으로 해석한다. 내봉성은 인사를 관장하는 관부로서 그 서열이 9위에서 2위로 상승한 것은 내봉성이 중시된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왕건이 왕권의 전제성을 탈피하고 호족연합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인사관장의 관부가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즉 왕건은 지방 여러 호족들과 연합하여 고려를 건국하였기 때문에 이들 호족세력들의 상호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인사 요구되었을 것이고 그만큼 내봉성이 중시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2) 비판론
최규성은 역대 광평성의 시중을 역임했던 인물들을 조사한 바 박질영 이하 염상에 이르는 역대 광평시중들은 호족세력을 대표해서 왕권을 제약하는 강력한 호족출신들이 아니라 유권열과 염상은 왕건의 또 다른 지지세력인 패서지역의 왕후 집안 출신의 측근 중신들이었다. 따라서 광평성은 왕건의 측근 중신들에 의해 운영되는 중앙관서의 수부이지 결코 왕권과 상대적 위치에 있던 호족세력을 대변하는 기구로 볼 수 없다고 본다.

(2) 군사제도의 운영-순군부, 병부
1) 연정설
군사적인 측면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순군부의 운영이다. 순군부에 대해서는 그 설치시기나 정치적 성격과 관련하여 여러 이견이 있다. 우선 설치시기에 대해 종래에는 고려 태조 대에 처음 설치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최근 궁예 정권 후반기부터 이미 존재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하현강은 순군부가 호족의 권익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그 군대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종합적인 기관으로 설치된 것인데 비해 병부는 왕권의 지배를 받는 고려국왕 직속의 병권장악기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른다면 순군부는 왕권의 직접지휘를 받지 않는 호족들의 군대인 셈이다. 또한 순군부와 병부의 병존의 의미를 호족의 군사력이 고려정부의 군사력보다 더 우위에 있었다는 것으로 본다.
신호철은 호족연합정권설을 지지하면서도 이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호족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왕권과 대립한 것만도 아닐 것이고 호족세력들 간에도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세력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순군부가 왕권을 견제하는 호족연합체적 군사기구라는 해석에 의문을 가진다. 따라서 순군부와 병부는 각각 지휘권과 행정권으로 임무가 양분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따르고 있다.

2) 비판론
당시의 관부체계를 호족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그 관련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박창희는 순군부가 병부위의 왕권 통제 밖에까지 있는 중요한 기관이라면 분명한 사료가 있어야 남아있어야 함에도 불구, 그것을 입증하는 사료가 불충분하며, 연정설이 내세우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 있다고 주장한다. 배현경, 신숭겸등이 순군부가 병권의 장악기관인 만큼 청주 출신인 玄律에게 순군랑중을 맡기지 말라고 상호한 것을 보고 하현강은 현률의 지역을 가지고 연정설을 주장하였으나, 박창희는 단지 순군랑중의 직책이 중요한 만큼 인사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자 한말일 뿐 더 이상의 해석을 불가능하다고 설명함 

참고문헌
河炫綱, 1974「高麗王朝의 成立과 豪族聯合政權」『한국사』4
朴菖熙, 1984「高麗初期 豪族聯合政權說에 대한 검토」『韓國史의 時角』
신호철, 1993「後三國時代 豪族聯合政治」『韓國史上의 政治形態』
-----, 1995「신라말 고려초 歸附豪族의 정치적 성격」『忠北史學』8
최규성, 1997「호족연합정권설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국사관논총』78
윤경진, 2002「고려초기의 정치체제와 호족연합정권설」『한국전근대사의 주요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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