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의 창조카리스마

 1  스티브잡스의 창조카리스마-1
 2  스티브잡스의 창조카리스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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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스티브잡스의 창조카리스마-4
 5  스티브잡스의 창조카리스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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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티브잡스의 창조카리스마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장. 과거의 애플은 왜 실패했나
2장. 좌뇌에서 우뇌로, 기술에서 디자인으로
3장. 창조적 혁신의 결정체, 아이포드의 탄생
4장. 애플의 부활에서 배우는 창조의 힘
5장. 아이포드의 시장 정복, 아이콘의 힘
6장. 창조 경영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본문내용
1장. 과거의 애플은 왜 실패했나

1955년 센프란시스코 남부출신 스티브 잡스는 게임회사 아타리에 근무하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몰두하다가 1976년에 단돈 1300달러를 가지고 차고에서 고등학교 선배인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컴퓨터를 창업하였다. 그리고 워즈니악이 개발한 컴퓨터 전문가용 반제품 상태의 애플Ⅰ으로 2만5천 달러어치의 첫 주문을 따는 등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이런 성공에 힘입어 1977년 일반인들을 위한 완제품 개인용 컴퓨터 애플Ⅱ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개인용 컴퓨터는 대형 컴퓨터업체인 IBM에게도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위 층에 있는 고객들이 애플에 흡수되는 통에 점차 대형 컴퓨터 구매 고객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플을 견제할 만한 신제품 개발이 그들의 당면과제가 되었다. 애플Ⅱ가 출시된 지 4년 뒤인 1981년 8월 IBM에서 첫 퍼스널 컴퓨터(Personal Computer)를 출시했다. IBM에서 하드웨어를 만든 이 컴퓨터의 이름 첫 글자는 이후 개인용 컴퓨터의 약어인 PC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한편 애플은 새로운 기종인 매킨토시(Macintosh, 미국에서 가장 크고 맛있는 사과의 이름도 매킨토시다)를 개발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보기에 IBM의 PC는 크고 투박했으며 사용법도 어려웠다. 그러나 IBM PC는 스티브 잡스의 예상과는 달리 크게 성공했다. 비록 사양이나 성능 면에서 애플Ⅱ에 비하여 탁월한 것은 아니었지만 IBM이라는 브랜드명과 마케팅 능력에 힘입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를 운영체제로 채택함으로써 많은 응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추가로 개발되었다. 결국 IBM의 추격으로 1983년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26%, IBM이 17%였으나 다음해에는 1,2위가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생들과 교육수준이 높은 지식인, 회사의 중간간부와 비서들이 주요 고객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그들에게 적합한 매킨토시를 개발하고 있었다. 반면 빌 게이츠는 실무적인 비즈니스 층이 주 고객이라고 보았고 그들의 비즈니스 업무에 도움이 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스티브 잡스의 비전대로 애플은 고급기술을 이용한 전문가 시장으로 가게 되고 IBM은 MS의 운영체제를 탑재하여 범용성의 비즈니스 시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시장의 강자가 가려지게 된다. IBM은 승자로, 애플은 패자로 말이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기술이 뛰어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좌뇌(左腦) 중심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 매킨토시의 기술 과신에 빠져서 실패를 자초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1985년 4월, 이사회에서 모든 실권을 잃었다.

2장. 좌뇌에서 우뇌로, 기술에서 디자인으로

1986년 말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난 후 넥스트(NeXT)를 창립하여 ‘넥스트큐브’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제품은 혁신적인 PC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그 사이 생겨난 새로운 경쟁자들로 인해 새로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1993년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하드웨어 생산을 중단하고 소프트웨어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의 감독 조지 루카스로부터 루카스 필름을 인수해 이 회사명을 픽셀(pixel, 화소)과 아트(art, 예술)를 합친 픽사(pixar)로 정했다. 어렵게 회사를 이끌어가던 시기에 원래 디즈니에서 일하다가 루카스 사단에 들어온 후 3D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한 존 래세터가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로써 탄생한 작품이 바로 5분짜리 3D 애니메이션 로, 훗날 의 원형이 된다. 이 작품은 또한 1989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이기도 하다.
*디즈니에게 배운 우뇌경영
틴토이는 픽사의 이름을 할리우드에 알리는 한편 스티브 잡스에게는 영화산업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픽사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래세터는 디즈니의 경영진인 제프리 카첸버그를 찾아가 크리스마스 특집물로 30분짜리 3D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카첸버그는 사장인 마이클 아이스너와 상의한 후 래세터에게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만드는 게 좋겠으며, 자금과 홍보 배급은 디즈니가 맡고 픽사에서 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왔다. 픽사로서는 구세주와 같은 제안이었다. 디즈니와 함께 만들면 자금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흥행에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영화로 1995년 개봉한 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픽사의 성공은 애플의 설립을 가능케 했던 창조성과 기술의 결합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를 디즈니와 공동 제작하는 4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히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고객 설정과 콘셉트 기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어린이와 여성 고객을 움직이려면 기술보다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4년 동안 디자인과 그래픽의 세계 속에서 살면서 디자인은 기술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임을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성과였다. 디즈니에게서 우뇌 중심적인 감성의 세계를 배운 것이다. 이것은 매킨토시를 처음 개발할 때에 기술과 제품의 우수성만을 생각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창조적인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좌우 뇌를 같이 사용하는 전뇌적 사고(whole brain thinking)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뼈아픈 실패를 통해 배웠다.
1995년 11월에 픽사의 주식이 공개되었다. 가 개봉한지 1주일 뒤였다. 1주당 39달러에 마감되었고 스티브 잡스는 다시 억만 장자가 되었다. 픽사의 성공은 애플의 경영진에게도 스티브 잡스의 존재를 다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스티브는 애플에 복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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