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학] 왕인박사의 인물탐구와 왕인박사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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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학] 왕인박사의 인물탐구와 왕인박사 유적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왕인박사소개

1.왕인박사소개

2-1. 문산재(文山齋)와 왕인(王仁)

2-2.그의 도일배경(渡日背景)

2-3. 일본문화와 박사 왕인

본문내용
박사 왕인은 백제 14대 근구수왕(近仇首王) 28년(373년) 3월 3일 월나군(月奈郡)이림(爾林)의 성기동(聖基洞)에서 왕순(王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의 성기동이다. 이곳 성기동은 '신령스런 바위(靈岩)'로 현묘하게 기봉준령(奇峰峻嶺)을 이루어 강정한 절의와 청고한 기운(氣韻)을 상징하는 월출산(月出山)의 주지봉(朱芝峰) 밑에 낮은 구릉으로 둘서싸인 아늑한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의 북쪽 구릉을 등지고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전 박사 왕인이 탄생한 고택지(古宅址)가 자리잡고 있다. 고택지 앞으로 차고 맑은 성천(聖川)이 흐르고 성천 건너편으로 월출산의 아름다운 지맥(支脈)이 느슨하게 굽어 흐르고 있다. 성천 바로 위쪽에 '구유바위(槽岩)'라 불리우는 기암이 육중하게 자리잡고 고택지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 유구한 세월을 두고 오직 박사 왕인의 유적지를 보호하고 지켜온 듯이. 이곳 탄생지 주변의 자연환경은 심현(深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묘절(妙絶)한 산세이다. 월출산 주지봉(朱芝峰)의 맑은 정기를 받아 태어난 왕인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총명했다. 준수한 동안에 눈망울은 초롱빛 같았고, 행동 하나 하나가 범상치 않았다. 어린 왕인은 문산재(文山齋)담 밖으로 흘러 나오는 강(講)을 듣고 홀로 글을 깨우칠 만큼 영롱했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 인을 얻은 부친 왕순은 인이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당시 성기동에서 반마장쯤 되는 '불무동'의 도요지(陶窯址)에서 일을 맡고 있던 그에겐 영특한 인이 자라고 있다는데 그렇게 마음 든든할 수 가 없었다. 총명한 아들 인을 문산재(文山齋)에 입문시켜 대학자로 길러 내겠다는 것이 왕순의 간절한 염원이었다. 그당시 문산재는 예로부터 수많은 선비와 명유(名儒)를 배출한 학문의 전당이었다. 학덕이 높은 석학들을 모시고, 가깝고 먼 각처에서 모인 우수한 수학자들이 경학(經學)을 익히는 곳이었다. 규율이 엄격하고 총명한 서생만을 입문시켰다. 근세에도 문산재에서 문·무과에 급제하는 문인재사가 적지 않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