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 미래를 여는 한국문화 세계로 통하는 왕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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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왕인박사
미래를 여는 한국문화
세계로통하는 왕인바람
왕인박사유적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에 있는 백제 때의 학자 왕인의 탄생지이다. 지정면적 185만 2400m2. 1987년 9월에 복원, 준공되었다. 왕인묘(사당) ·내삼문(內三門) ·외삼문 ·문산재(文山齋) ·양사재(養士齋) ·전시관 ·왕인상 ·책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왕인묘(약 82.5㎡)에는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왕인이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곳으로, 월출산(月出山) 서쪽 산 중턱에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책굴은 왕인이 학문을 수련할 때 쓰던 석굴이다.전시관에는 탄생도 ·수학도(修學圖) ·도일도(渡日圖) ·학문전수도 등이 걸려 있다.
이 밖에 일찍이 외국문화를 받아들이고 전수하는 대외무역항구로서 선사시대부터 문화가 발달되고, 왕인이 일본으로 떠날 때 배를 탔던 상대포(上臺浦)도 복원되었다. 또, 왕인이 고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보았다는 돌정고개도 남아 있는데, 이곳은 백제 때의 토기제조촌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 지방에서 벌어지는 산유놀이 때, 왕인이 마셨다는 성천(聖泉)의 물을 마시면 왕인과 같은 훌륭한 사람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왕인박사는 백제 제14대 근구수왕(서기375-384년)때에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탄생하였다. 8세 때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입문하시어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고,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되었다. 이 무렵 백제는 고구려의 계속적인 침략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태였으며 17대 아신왕은 지금의 일본인 왜와 수교를 맺고 태자전지를 일본으로 보냈다. 왜왕 응신은 백제의 태자전지가 도왜한지 7년 만에 백제의 태자를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내면서 훌륭한 학자를 청하였다. 백제 17대 아신왕때에 왕인은 일본 응신천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 것으로 구전되어오고 있다. 당시 왕인은 32세 이었으며, 상대포는 국제 무역항으로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로 유학을 갈 때에도 이곳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고 전해오고 있다.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도공, 야공, 와공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도일하여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으며, 일본가요를 창시하고 기술 공예를 전수하여 일본인 들이 큰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飛鳥)문화와 나라(奈良)문화의 원조가 되어 일본사회의 정치 경제와 문화 예술을 꽃피웠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오사카(大阪府) 히라카타(枚方)시에 있으며, 1938년 5월 대판부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는 왕인박사 유적지를 정화하여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양력 4월 초에 왕인박사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이 유적지는 여러 차례의 고증을 거쳐 1985. 8. 16 복원의 첫 삽을 뜨고 1987. 9. 26 주한일본대사와 학계 원로등이 참가하여 준공식을 거행했다. 유적지 일대(영암군 군서면 성기동)는 기념물 제 20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 곳에는 왕인박사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집터와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또 월출산 중턱에는 박사가 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책굴과 문산재, 양사재가 있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난 후 그의 고향 후학들이 인재를 길러낸 곳으로 매년 3월3일 왕인박사의 추모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책굴 앞의 왕인박사 석인상은 박사의 후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성기동 남서쪽에 있는 돌정고개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정든 고향을 되돌아 보았다 하여 돌정고개가 되었다 한다.
건물소개
전시관입구
왕인박사묘
(왕인박사위폐와 영정을모셔놓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