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역사답사] 조선시대 유학의 진흥과 유배문화(오현단, 추사적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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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학][역사답사] 조선시대 유학의 진흥과 유배문화(오현단, 추사적거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답사의 의의

2. 기본내용

3. 과 의 현장상황

4. 현재적 의미

본문내용

□ 장소 : 제주읍성→오현단→제주목관아지→가마오름 평화박물관→추사적거지, 삼의사비
→알뜨르비행장 및 통신시설→비행기 격납고 및 섯알오름 학살터→하멜표류지

조선시대 유학의 진흥과 유배문화 - 오현단, 추사적거지

1. 답사의 의의
이 보고서는 답사지 중에서도 과 를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 두 유적지는 크게 보면 유학의 진흥과 포교, 그리고 유배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대적으로는 조선시대의 역사적 유물이다.

2. 기본내용
▶ 오현단 (제주시 이도 1동 1421번지, 제주도 기념물 제1호(1971. 8. 26))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귤림서원(橘林書院)이 훼철된 후, 1892년(고종 29) 제주 유림들의 건의에 의해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던 오현(五賢)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祭壇)이다. 오현은 충암 김정을 비롯하여, 1601년(선조 34) 소덕유(蘇德裕)․길운절(吉雲節) 역모 사건 때에 안무어사(安撫御史)로 제주에 파견되었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 1669년에 배향), 대정현에 유배되었던 동계(桐溪) 정온(鄭蘊 : 1669년에 배향)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 1695년에 배향), 제주목사를 역임한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 : 1682년에 배향)를 말한다.
이 곳에는 지금도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조두석(俎豆石)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유적 내에는 ‘증주벽립(曾朱壁立)’의 마애명과 귤림서원묘정비(橘林書院廟庭碑), 향현사유허비(鄕賢祠遺墟碑) 등이 세워져 있다.(자료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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