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플루타르코스 vs 사마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플루타르코스와 사마천의 일대기
①플루타르코스
②사마천
2 대표작들에 투영된 그들의 사상
①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②사마천의 '사기'
3 플루타르코스와 사마천의 비교
①차 이 점
②공 통 점
본문내용
1.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 ~ 120?]와
사마천[BC 145 ? ~ BC 86 ?]의 일대기
① 플루타르코스
그리스의 카이로네이아 출생. 영어식 이름은 플루타크(Plutarch). 그리스의 카이로네이아의 명문가 출신으로 일찍이 아테네로 가서 아카데메이아에서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고, 다시 자연과학과 변론술을 배웠다. 그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방문, 로마에서는 황제를 비롯한 많은 명사들과 깊은 친교를 맺어 아카이아주(그리스 본토) 지사에 임명되었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얻었다. 만년에는 델포이의 최고신관(最高神官)으로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그리스인으로서 대지의 중심인 델포이의 아폴론 신역의 황폐화를 염려하여 그 부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최후의 그리스인'으로서 고전 그리스 세계에 통달한 일류 문화인이었다. 플라톤 철학을 신봉하고 박학다식한 것으로 유명하며, 저작활동은 매우 광범위하여 전기·속윤리(俗倫理)·철학·신학·종교·자연과학·문학·수사학에 걸쳐 그 저술이 무려 250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작품은 《전기》 《영웅전(플루타크영웅전)》 《윤리론집》(모두 그리스어로 씌었다) 등이다.
전기 중에서 현존하는 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사한 영웅 23쌍의 대비열전(對比列傳)과 4편의 단독전기인데, 개인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기술하여 만인의 귀감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의 역사에 대한 기술은 사료비판이 결여되어 있어 제1급 역사기술로는 평가되지 않으나 근세 서유럽에서 널리 애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