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옐로우 저널리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 옐로우 저널리즘의 기원
(참고)
[리차드 팬턴 아웃컬트(Richard Fenton Outcault, 1863.1.14~1928.9.25)]
[맥미켄 대학 건물]
[홀즈 세이프 앤 락 금고, 가운데 풍경화가 있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 에디슨 전시장]
[파리 라틴지구]
[일렉트리컬 월드 매거진 1895년 5월호 중에서]
[호건 골목의 봉건적 자존심]
[정당한 챔피언]
[조셉 퓰리처]
[1895년 5월5일 일요일자에 실린 호건 골목의 서커스, 오른쪽에 옐로우 키드가 보인다.]
[1895년 11월24일자에는 옐로우 키드는 비로소 진정한 ‘옐로우’로 그려진다.]
[윌리엄 허스트]
[1896년 10월 4일자 뉴욕 월드지에 실린 옐로우 키드, 왼쪽 위에 그려진 연 위에는 ‘다음 주까지 기다려 달라’는 글자까지 써 있다.]
[10월 18일자 뉴욕 저널의 옐로우키드.]
▲ 옐로우 저널리즘의 개념
▲ 옐로우 저널리즘의 현상
#1.나영이 사건
#2. [짐승이라니 …격조 있게 한번 울어봐라]
#3. [與 계파초월 ‘밥상 정치’]
▲ 인터넷 속 올바른 저널리즘 윤리 확립을 위한 방안
가. 독자 측면-현명한 기사 분별력 함양
나. 언론사 측면-올바른 포털 저널리즘 확립
다.제도적 측면-편집권, 의제 설정권 관련 법 제정
▲ 옐로 저널리즘이 출현했던 당시와 이후의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
1. 당시에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
2. 이후의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
본문내용
[리차드 팬턴 아웃컬트(Richard Fenton Outcault, 1863.1.14~1928.9.25)]
아웃컬트는 1863년 1월 14일 오하이오주 랭가스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제시, 어머니의 이름은 캐서린이었다. 어릴때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였으며, 15세 때인 1878년 신시내티의 맥미켄 대학 디자인 스쿨에 입학했고 3년 후인 1881년에 졸업한다.
[맥미켄 대학 건물]
졸업 후 그는 신시내티의 한 금고 회사에서 화가로 경력을 시작한다. ‘홈즈 세이프 앤 락’이라는 이 금고회사는 금고 문짝에 회사 이름과 신시내티라는 지명을 새기고 그 사이에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을 그려넣은 금고를 제작했다.
[홀즈 세이프 앤 락 금고, 가운데 풍경화가 있다.]
1888년 오하이오 밸리와 미들 아틀랜틱 스에티츠 100주년 박람회가 신시내티에서 개최된다. 이 박람회의 에디슨 연구소 전등 전시장에서는 정교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줄 사람으로 아웃컬트를 고용했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아웃컬트는 곧 이어 뉴저지 웨스트 오렌지의 에디슨 본사에 정직원으로 고용된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 에디슨 전시장]
1889년 에디슨은 아웃컬트를 순회 전시회 책임 아티스트로 임명하고 파리 만국 박람회장으로 파견한다. 이 때를 기회로 그는 파리의 라틴지구에서 미술 공부를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