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베리(Wallenberg) 가의 기업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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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렌베리(Wallenberg) 가의 기업승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가. 기업 승계 독이 될 것인가, 약이 될 것인가?
나. 발렌베리(Wallenberg) 가란?
1. 발렌베리(Wallenberg)의 시작과 오늘
1) 시 작
2) 오 늘
3) 발렌베리 가의 다섯 세대에 걸친 발전
3. 발렌베리(Wallenberg) 가의 스웨덴에서의 위치
4. 발렌베리(Wallenberg)의 유명 계열사
1)세계 최대의 이동 통신 회사 에릭슨 (ERICSSON)
2)세계 최대의 의약품 회사 아스트라제네카 (Astrazeneca)
3)세계를 선도하는 초일류 엔지니어링 기업 ABB
4)하이테크 전투기의 최강자 SAAB
5)스웨덴의 로열 뱅크 SEB (Skandinaviska Enskilda Banke)
5. 왜 발렌베리(Wallenberg)인가?
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발렌베리가의 기업승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승계사례를
통해 지향할 점 파악

1. 발렌베리가의 승계과정

1) 1세대 (발렌베리가의 시작)

2) 2세대 (발렌베리가의 발전)
3) 3세대 (발렌베리가의 부흥)
4) 4세대 (발렌베리가의 위기)
5) 5세대 (현재의 발렌베리가)
2. 발렌베리가의 기업승계 사례를 통해 지향할 점

1) 치밀한 양육 프로그램
2) 원톱보다 강한 투톱
3) 폭넓은 지식과 네트워크
4) 책임감과 기업가 정신
3. 참고문헌-
라. 발렌베리와 삼성의 비교
1. 경영권 승계 과정
2. 핵심 의사결정 기구의 투명성
3. 소유지배구조
4. 사회적 책임
마. 우리의 결론
본문내용
5. 왜 발렌베리(Wallenberg)인가?
☞엄격한 후계자 교육이 대대로 존경 받는 부자를 만든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 정신아래 5세대 째 이어 내려져 오고 있는 발렌베리는 성공적 기업 승계의 대표적 사례로 손 꼽힌다.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오너경영 방식으로 기업이 이어져 왔지만, 현재 발렌베리 그룹이 스웨덴 경제의 1/3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경영진의 재산은 고작 200억 정도일 뿐이다. 어떤 독특한 경영철학아래 경영승계가 이루어 지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탐구해보고 지향할 점과 지양할 점을 구분한 뒤 우리나라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대안을 가늠해 보려고 한다,

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발렌베리가의 기업승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승계사례를
통해 지향할 점 파악

1. 발렌베리가의 승계과정

1) 1세대 (발렌베리가의 시작)
발렌베리의 역사는 후발산업국 스웨덴의 발전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스웨덴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8,400달러에 이르는 ‘북유럽의 부국’으로, 세계 최고의 복지제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19세기 후반만 해도 ‘유럽의 뒷골목’으로 불릴 만큼 가난한 나라였다. 발렌베리의 시작은 스톡호름엔스킬다은행(현재의 SEB)의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로부터 시작된다. 앙드레는 해군사관학교에 복무하던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은행에 눈을 뜨게 되었고 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스웨덴으로 돌아와 1856년에 발렌베리 왕국의 모태가 되는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현 SEB)을 개설한다. 앙드레는 뛰어난 은행업무 능력과 신념으로 자신의 은행을 성장시켰고, 앙드레는 ‘스웨덴 제2의 군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영향력을 키웠다. 스웨덴 산업화의 물꼬를 튼 혁신적인 은행가인 그는 1886년,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2) 2세대 (발렌베리가의 발전)
앙드레가 죽자 33살의 장남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가 은행을 이어받았다. 크누트는 해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적인 은행 크레딧리요네에서 전문적인 금융교육을 받았으며, 21살 때부터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이사로 선임돼 은행 경영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등 은행가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은행 또한 크누트의 경영으로 불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은행의 최고 경영자가 된 크누트는 대출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들의 처리 문제로 고민하던 중 법률교육을 마치고 판사임용을 앞두고 있던 이복동생 마쿠스 발렌베리 시니어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쿠스 발렌베리 시니어는 크누트와 마찬가지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루 웁살라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고 사업에 있어서 크누트보다 더 신중했다. 마쿠스는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우선 부실기업 중에서 성장잠재력이 있는 업체들을 발굴하여 회생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선장이 우선, 그 다음이 배’라는 발렌베리의 핵심 경영원칙들을 확립되었다. 마쿠스는 대부분 무능력한 경영자들이 회사를 망치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핵심 경영진을 교체하는 동시에 장기간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발렌베리는 크누트와 마쿠스로 인해 소유기업을 하나 둘씩 늘려가기 시작했다. 철강회사 호포스(현재의 SKF)에 이어 발전설비회사 아세아(현재의 ABB), 트럭제조회사 스카니아 바비스(현재의 스카니아)등이 잇따라 발렌베리에 편입되었으며 발렌베리의 경제적 영향력도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자녀를 두지 못한 크누트는 공익재단인 ‘크누트앤앨리스발렌베리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고, 마크스는 두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은 발렌베리의 다음 세대 주역이 된다.

3) 3세대 (발렌베리가의 부흥)
크누트와 마쿠스 형제의 뒤를 이어 발렌베리 왕국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은 마쿠스의 두 아들 야콥 발렌베리와 마쿠스 발렌베리 주니어였다. 1927년에 야콥은 스톡홀름앤스킬다은행의 사장에, 마쿠스 주니어는 부사장에 각각 올랐는데, 크누트와 마쿠스 시니어에서 시작된 ‘투톱(Two-top) 경영’은 이후 발렌베리 가문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들 형제는 뜻밖에 사건으로 에릭슨을 인수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볼베이링 기업이자 볼보의 모태가 된 SKF, 디젤엔진의 독점권을 가진 아트라스 디젤,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중전기업체 아세아, 트럭 제조회사 스카니아바비스, 제약회사 아스트라 등 이미 많은 핵심기업을 거느리고 있던 발렌베리는 더욱더 거대한 산업왕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4) 4세대 (발렌베리가의 위기)
마르크 발렌베리는 마쿠스 발렌베리 주니어의 장남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후 뉴욕과 런던, 파리, 제네바의 국제적인 금융회사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1958년부터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사장으로 일했다. 마쿠스의 형 야콥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발렌베리를 이끌어갈 다음주자는 당연히 마르크의 몫이었다. 그러나 1971년 11월 스톡홀름 남쪽 숲에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사장 마르크 발렌베리가 그의 라이플총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마르크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뛰어난 사업가였던 마쿠스는 언제나 마르크의 흠을 잡으며 위압적인 태도로 훈계를 늘어놓는 등 아들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했다. 그리고 그 당시가 발렌베리가의 큰 위기였다.
마쿠스는 야콥을 밀어내고 스톡홀름에스킬다은행의 회장에 올랐고, 강력한 경쟁 업체인 스칸디나비스카은행을 합병했고 마르크에게 사장직을 물려주려고 했으나 마르크는 자살한 상태였다. 스칸디나비스카엔스키다은행(SE방켄)은 이제 더 이상 발렌베리 가문의 은행이 아니었다. 70대 노인이된 마쿠스는 SE방켄에서 쓰라린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혀 꺾이지 않았다. 그는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던 둘째 아들 피터 발렌베리를 불러들였다.
피터 발렌베리는 스톡홀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곧바로 아트라스콥고에 입사하여 여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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