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

 1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
 2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2
 3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3
 4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4
 5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5
 6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6
 7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7
 8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8
 9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9
 10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0
 11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1
 12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2
 13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3
 14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4
 15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5
 16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6
 17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7
 18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8
 19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19
 20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2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상록수를 통해 본 1930년대 농촌운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Ⅰ.작품 및 작가 소개

Ⅱ. 1920-1930년대 시대상황
ⅰ. 1920년대 식민지 상황
ⅱ. 우가키 총독의 농공병진정책

Ⅲ. 소설을 통해 본 민족주의적 농촌운동
ⅰ. 1930년대 농촌의 현실
ⅱ. 브나로드 운동
ⅲ. 야학운동

Ⅳ. 상록수로 본 일제에 의한 농촌진흥운동
ⅰ. 농가 경제 갱생 계획
ⅱ. 농지령
ⅲ. 자작농지설정사업과 식산계령

Ⅴ. 지배권력의 침투과정
ⅰ. 일제의 지주 포섭
ⅱ. 일제의 중견인물 포섭

Ⅵ. 당대 시대인의 모습

Ⅶ. 기독교계의 농촌운동 - 농촌계몽과 조합운동

결론
본문내용

학생들이 여름 동안 가,갸와 1,2,3을 가르치는 것을 동아일보사에서는 브나로드 운동이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만일이라도 오해받기 쉽고 또 알아듣기에 불편이 있다고 하여 계몽운동이라고 개명을 하기로 하였다. (중략)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은 정치, 경제, 사상, 이 모든 방면의 이야기는 一言도 말아야 한다. 설마 이야기한다고 해야 이해도 못할뿐더러 큰 이 사업에 자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禁止에 대하여는 지방과 개인을 따라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 유지들의 지도를 구하며 일하기 전에 당국의 양해를 구하라. 그리고 각 농촌에 기설된 진흥회, 교회 같은 기관의 원조를 받아 단순히 글자만 가르치면 우리의 목적은 달하리라고 믿는다. 기애도, 「상록수론」, 숭실어문- 제21, 숭실어문학회, 2005, p.10(재인용).


위 글에서 나왔다 시피 브나로드 운동의 한계는 바로 문자보급 및 문맹퇴치에 있다. 그래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것으로 오해가 있을까봐 브나로드라는 명칭을 계몽운동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기애도, 같은 논문, pp.10-11.

그러나 계몽운동에 직접 참여하게 된 학생들은 농촌문제가 단순한 문맹퇴치로써 해결 될 수 없음을 인식한다. 일제의 정치권력과 동맹한 지주계급의 지나친 횡포, 부채의 증가, 소작농으로 전락된 대다수의 농민들이 갖고 있는 절망적 세계관등 농촌이 안고 있는 문제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김현자, 「상록수 고」, 태능어문, 서울여자대학교, 1983, p.7.
동아일보와 계몽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 간의 미묘한 갈등은 상록수에서도 표출된다.

『그러나, 현재의 정세로 보아서, 어느 시기까지는 계몽운동과 사상운동을 절대로 혼동해서는 아니 됩니다. 계몽운동은 계몽운동에 그칠 따름이지, 부질없이 혼동해 가지고 공연헌 대까지 폐해를 끼칠 까닭은 털끝만치고 없읍니다』
『눈뜬 소경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는 것은 두 말헐 것 없이 필요헙니다. 계몽운동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헌 사업 중의 하나인 것도 사실입니다....(중략)...물질로 즉 경 제적으로는 일조일석에 부활하기가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온갖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정신(精神), 요샛말로 「이데오르기」를 통일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우려야 하겠읍니다!』

그러나 같은 문맹퇴치를 중심으로 한 브나로드은 유사한 내용의 ‘조선농촌진증운동’, 즉 자력갱생으로 표현된 우가키의 농산어촌 진흥운동 및 정신작흥, 사회 교화운동 등이 총독부에 의해 대대적으로 추진되자, 급격하게 그 세력을 상실하게 된다. 정성희, 「1920년대 실력양성운동에 대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내용 분석 : 교수요목부터 6차교육과정까지」,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2001, p. 56-57
결국 계몽운동은 1930년에 들어와 농촌진흥운동과 자력갱생운동이라는 총독부 주도의 관제운동 속에 흡수되어 간다. 이와 같이 브나로드 운동은 상록수라는 소설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나 사상은 배재한 채 문자의 보급만을 주요한 내용으로 삼은 운동이다. 따라서 작가는 브나로드 운동을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넘어서서 사상과 문자의 보급이라는 측면 모두를 받아들여 전개해 나가려는 생각에서 작품을 서술했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ⅲ. 야학운동
야학이란 야간에 실시하는 사설학술강습회의 한 형태로써, 한말에 보이는 학회가 강습회 속으로 스며들은 것으로 보인다. 야학의 기원은 1906년 함남 함흥군 주서면의 보성야학이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3·1운동 이후 1920년대 농민·노동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부터이다. 지방유지, 농민·노동자·청년단체, 종교기관
참고문헌
참고논문
기애도, 「상록수론」, 숭실어문- 제21, 숭실어문학회, 2005.
김용철, 「宇垣一成의 朝鮮觀과 農村振興運動」, 전통문화연구 6, 조선대학교인문학연구원, 1999.
김주용, 「일제강점기 양주지역의 농촌사회실태」, 사학연구, 한국사학회, 1999.
김현자, 「상록수 고」, 태능어문, 서울여자대학교, 1983.
김호일, 「일제하 농촌계몽운동과 최용신」, 중앙대학교 인문학연구-제32, 중앙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김춘수, 「1930年代 日帝 農村支配와 '中堅人物' 養成」, 성균관대석사학위논문, 1997.
김권정,「1920~1930년대 한국기독교의 농촌협동조합운동」, 숭실사학 제21, 숭실대학교사학회, 2008.
전상숙, 「우가키 총독의 내선융화 이데올로기와 농공병진 정책 」, 현상과 인식 제 34권, 한국인문사회과학회, 2010.
정요섭, 「일제치하의 브나르도운동에 관한 연구」, 논문집-제14, 숙명여자대학교, 1974.
이운학, 「브나로드운동과 Freire의 교육사상의 민중교육적 성격 고찰」,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사회전공, 2004
정성희, 「1920년대 실력양성운동에 대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내용 분석」,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2001.
양영환, 「1930年代 朝鮮總督府의 農村振興運動」, 숭실대석사학위논문, 1988.
전홍식, 「일제강점기 충주의 식민통치 연구 식민통치 조직과 구조를 중심으로」, 충주대석사학위논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