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중국사] `강청`의 생애와 중국의 문화 대혁명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강청의 어린시절
2. 배우 ‘남평’의 인생
3. 모택동의 부인으로서의 강청
4. 정치가로서 도약을 꿈꾸는 강청
5. 문화 대혁명에서의 강청
6. 최고 권력가로서의 강청과 강청의 최후
본문내용
2. 배우 ‘남평’의 인생
강청은 17세 되던 1931년 봄에 실험극원의 원장이었다가 청도대학 학장으로 임명된 조태모의 도움을 받아 청도대학 도서관 직원이 되었다. 당시 급진적인 정치가 황경과 동거하고 있던 그녀는 반일학생운동에 참여했고 1932년에 좌익극작가 연맹에 가입했으며 이어서 공산당에 하급당원으로 입당했다. 그 후 황경이 체포되자 강청은 상해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다시 황경을 만났으나 그의 부모의 반대로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렀다. 강청은 1934년 5월경부터 야학교 교사로서 여도들에게 연극, 한자를 가르쳤고 학생들을 조직하여 농촌에 가서 소규모의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중국공산당 등 여러 정치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34년 10월에는 국민당에 붙잡혀 상해시 공안국에 1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일찍이 노라와 같이 해방된 여성이 되고 싶었던 강청은 ‘남평’이라는 예명으로 입센의 의 여주인공 노라의 역을 맡으면서 일약 연극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그녀는 당시 상해 영화계에서 영향력이 있던 영화평론가 당납과 열애에 빠졌다. 그 후, 강청은 몇 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인기를 얻을 수 없었다. 1937년 5월 강청은 당납과 헤어지고 상해 연극계에서 매우 명망이 높던 연출가 장민과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다시 연극계로 돌아와 장민의 명성을 이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은 또 다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937년 7월 상해에서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된 강청은 꿈을 접고 도망치듯 상해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