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및 인터넷 시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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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문 및 인터넷 시사만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사만화의 정의 및 특징
1.1 정의
1.2 특징
2 시사만화의 역사
2.1 일제시대~이승만 정권
2.2 군부독재정권
2.3 군부독재정권 후
2.4 인터넷 시사만화의 등장
3 시사만화의 현황
3.1 매체 환경 변화에 따른 시사만화 현황
3.2 열독률 하락에 따른 시사만화 현황
3.3 온 오프라인 시사만화 비교분석
4 시사만화 이슈자료
4.1 수원 살인 사건 관련 만화
4.2 4.11 총선 관련 만화
5 문제점 및 발전방향
5.1 문제점
5.2 발전방향
본문내용
시사만화의 정의
시사만화란 시사적 문제나 인물 등에 대한 풍자적 만화를 말한다. 보통 여러 개의 컷(보통4개)으로 되어있다. 한국 만화박물관에서는 시사만화를 정치권력과 민감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풍자하고 비판하는 장르라고 기재하였다. 주로 신문, 잡지 등 시사적 매체에 실리며, 시사만화가들은 때때로 정치권력과 의 갈등으로 인해 벌금, 연행, 가택연금, 퇴사 등의 필화사건을 당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고바우영감, 두꺼비, 왈순 아지매가 있으며 박재동의 ‘한겨레 그림판’은 기존의 만평형식을 뛰어넘은 파격적인 형식과 아이디어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시사만화의 특징

시사만화의 역사
시사만화는 2012년 현재 103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2009년 100주년 기념전 당시 전국시사만화협회 김용민 회장은 ‘시사만화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였으며, 엄혹한 시절을 헤쳐 나가는 시대의 등불이었고, 서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약자의 대변자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신문 시사만화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정치성과 풍자의 부침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통제와 압력, 신문사의 경제적 수익추구, 사회문화적 환경과 독자의 수용정서 그리고 작가의 역량과 작품적 완성도에 따라 변화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러한 요인들을 중심으로 한국 시사만화의 흐름을 통시적으로 살펴보면서 유형별로 그 성격 및 기능의 변화를 읽어내고자 한다.

최초의 시사만화는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에 실린 관재 이도영선생의 ‘삽화(揷畵)’로, 턱시도 차림의 신사가 대한민보의 창간 취지 4가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각각의 의미를 살펴보면, ‘대국(大局)의 간형(肝衡)’-정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혼(韓魂)의 단취(團聚)’-한민족의 혼을 통합해 난국을 타개하며, ‘민성(民聲)의 기관(機關)’-백성의 목소리를 모아, ‘보도(報道)의 이채(異彩)’-신문의 보도 내용을 다채롭게 한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민보의 사명은 사상을 통일해 민족의 단결을 꾀하는 동시에 동포를 지도계발하기 위한 지식의 보급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었고, 따라서 이 만화도 그러한 사명을 표현한 풍자화의 성격을 띠었다. 이 만화는 친일파에 대한 비난이나 비유를 통해 일본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한편 일제의 탄압을 지적, 풍자적인 비난을 가하였다. 하지만 사전검열을 통해 삭제 혹은 취소 명령 등을 가한 일제의 강력한 통제와 탄압을 받았으며 결국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폐간이 되면서 한국의 신문시사만화는 10여 년의 공백기를 갖는다.
대한민보의 시사만화는 미숙한 선과 비체계적인 지면구성 등의 허점을 드러내었으나 한국언론사에서 갖는 의의는 적지 않다고 평가된다. 첫째, 신문시사만화의 대중확산의 계기를 마련하여 글을 읽을 수 없는 국민에게도 만화라는 매개를 이용해 현안의 시사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둘째, 시사만화에 대한 논평기능을 수행하는 ‘한국적 시사만화’의 원형을 제시함으로써 오락적 기능보다는 언론 본연의 현실정치보도 기능에 더 충실한 한국 신문 시사만화의 전통을 출범시켰다. 셋째, 신문 시사만화의 치열한 비판, 풍자정신을 정립 합으로써 한국 신문시사만화의 강한 정치적 비판과 풍자의 전통은 대한민보 이후 우리 신문만화에서 일관되게 확립되었다.
한국 신문 시사만화의 고유한 특성으로 간주되는 네 칸 연재만화가 처음부터 강한 정치성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고정적인 작가에 의해 일정한 주인공을 가지는 본격적인 네 칸 연재만화가 등장한 것은 1920년대 중반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풍자하고 시사적인 공감을 유발시키기 보다는 주로 우스꽝스러운 유머에 치중한 형태를 띠었다. 이러한 성격을 갖게 된 것은 일본의 강력한 기사검열과 발간중지 등의 언론통제 하에서 불가피한 대안으로 취해졌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판매전략의 일환으로 연재만화를 도입한 미국의 황색 저널리즘과는 분명한 차이를 갖는다.
이러한 탈 정치적 요소는 6•25사변 이후 휴전이 성립되고 점차 정국이 안정됨에 따라 신문만화가 제자리를 찾게 되면서 등장한 네 칸 연재만화에도 이어졌다. 초기에는 주로 가정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유머와 난센스적인 팬터마임 스타일의 명랑 풍자 물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사회의 모순들을 직간접적으로 비판하고 풍자하는 시사성 위주의 만화로 그 성격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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