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일본문화]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개 요
일본의 행정구역상으로 볼 때, 오키나와는 일본의 47개도,도,부,현 가운데 가장 작은 하나의 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야마토"(오키나와말로 일본을 의미)와는 구분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이러한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가운데 배양된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오키나와는 중국과의 진공무역을 중심 으로 우리나라(부산)를 비롯하여, 일본,베트남,타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등과의 중계 무역을 통해 번성을 누린 "류큐"라고 하는 독자적인 왕국이었던 것이다
"무기가 없는 섬"이라고 불리었던 "류큐왕국"은 17세기 초 우리가 흔히 왜라고 물렀던 사츠마번의 침략에 의해 경제적인 수탈을 당하다, 명치 12년인 1879년에 이루어진 "류큐처분"에 의해 일본의 일개 현으로 강제 편입된다. 일본의 일개 현으로 편입된 "류큐"는 결국 근대국가 일본의 팽창주의 역사의 첫 페이지를 채워주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류큐처분"이란 우리의 "한일합방"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한일 합방이후 한반도에서 시도된 식민통치의 거의가 "류큐"에서의 경험을 근거로 시도된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류큐처분"에 의한 나라를 잃고,일본의 일개 현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 땅의 백성들의 아픔과 상처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나간 한 세기 오키나와는 동아시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강대국간의 팽창주의 경쟁의 거의 모든 장면과 관련되어 타의에 의한 고통을 겪었다.
군국주의롤 무장한 근대국가 일본의 첫 식민지로, 천황제를 근간으로 한 철저한 황국신만화 교육의 전장으로, 패전이후 천황제 유지를 위한 제물로 미국에 바쳐져, 미군정 통치하의 준식민지인 "류큐정부"로 '미군기지'를 위한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때 무기가 없는 섬이라도 불리었던 이 땅이 기지와 무기의 땅이 된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각지의 무력분쟁이 있을 때마다 "기지의 땅" 오키나와는 분주해진다
이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의 체면을 회복하기 위하여 어느날 갑자기 오키나와의 반환 문제를 제기한다. 천황제 유지를 위한 제물로 미국에 바쳤던 오키나와를 반환 받음으로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전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