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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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네오 휴머니즘의 전개과정
3. 네오 휴머니즘의 성과와 한계
본문내용
1. 서 론

프로문학이 퇴조한 뒤 1930년 초반부터 시작되어 1930년대 말까지 줄곧 지속된 논쟁은 휴머니즘 논쟁이다. 1933년 백철의 ‘인간묘사론’ 백철은 “금일 문학의 중심과제는 새로운 인간형을 탐구하는 데 있다”라는 앙드레 지드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묘사론에 대해 스스로 감격한다. 이러한 백철의 ‘인간 묘사론’의 핵심은 문학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분리, 정치성과 사회성으로부터 문학의 독자성 옹호, 외부의 불순한 조건에서 벗어난 순수한 인간성의 탐구 주장 등이 그것이다. 백철, 「현대문학의 과제인 인간탐구와 고뇌의 정신」 조선일보, 1936년 1월12일
이 단초가 되어 1930년대 말까지 우리 비평계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휴머니즘론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이후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되었다. 즉, 휴머니즘은 서구 근대성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고 하겠다. 이렇게 시작된 휴머니즘 논쟁은 1935년을 기준으로 논쟁의 성격이 구분된다. 1935년 이전까지의 휴머니즘에 관한 논쟁이 국내의 창작방법론으로부터 시작되어 인간묘사와 연관된 논쟁이라고 한다면, 1935년 이후의 휴머니즘 논쟁은 ‘국제작가회의’와 제7차 코민테른이라고 하는 국제적 문단상황의 영향으로 시작된 논의이다. 즉 파시즘에 대항하려는 휴머니즘에 관한 이론적 논의라는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작가들의 모임에서 산출된 휴머니즘 문학론은 그 태동 자체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것일 수 없었다.
이 논쟁에는 백철, 임화, 안함광, 김남천, 한설야 등 당시의 주요 이론가들이 모두 참여했고, 해외문학파의 일부 이론가들의 활동 역시 논쟁의 촉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아울러 김오성, 윤규섭 등과 같은 새로운 논자들이 이 논쟁을 통해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런 점을 살펴볼 때 휴머니즘은 범문단적인 관심 속에 이루어진 논쟁이었다.
이러한 휴머니즘 논쟁에서 뚜렷한 자기 논리를 전개했던 비평가 중의 한 사람이 김오성이다. 그는 네오 휴머니즘을 비롯하여 능동적 인간의 창조, 지성의 재건 등과 같은 비평적 논리를 근대성에 기초해 펼쳐나간다.
본고에서는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의 본질은 무엇이었고, 네오휴머니즘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었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김오성, 「네오 휴머니즘 문제」, 조광 제14호 1936.12
김오성, 「휴머니즘 문학의 정상적 발전을 위하여」 조광 1937.6
김오성, 「역사에 있어의 인간적인 것」 인문평론 제2권 3호 1940.3
김오성, 「네오휴머니즘론」 조선일보 193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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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기, 「한국 근대문학 비평가론」 월인 1999
김영민, 「한국 문학 비평 논쟁사」 한길사 1992
정명한, 「문학을 생각하다」 문학과 지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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