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알아보는 70년대 여성노동 운동 그녀들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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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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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녀들의 자화상
- 70년대 여성 노동운동
Ⅰ. 서론
국민 소득 2천 달러 시대, 이제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중의 한 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시행된 대한민국 제1의 통치권자의 분명한 목표 하에 시행된 경제개발정책으로 인한 결과인 이러한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암울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그 당시 노동자들의 울분이 존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정한 경제성장 국가 목표 그 자체는 타당했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 자신의 집념도 평가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목표로 향하는 과정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함께 했다. 특히 70년대 유신체제라는 1인정치제도로 말미암아 국민은 알권리를 포기한 채 한 사람이 치닫는 길을 무조건 걸어야 했다. 이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숱한 모순과 갈등을 빚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경제적인 면에서의 갈등은 1970년대 극에 달하게 된다. 70년대 노동운동의 시작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부근의 어느 피복 공장에서부터였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다. 7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사건 이후 70년대는 박수 받을 만한 경제성장의 뒤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목청이 높아지며 많은 노동 쟁의가 일어난 격랑의 시대였다. 헌데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70년대 노동운동의 대부분이 나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노동쟁의에 있어 남성노동자보다 여성노동자가 압도한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한국 노동운동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그 이유는 한국의 나이어린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 여성 근로자의 임금이 남성 근로자의 임금의 절반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가계의 책임을 지고 있는 남성 노동자들에 비해 여성은 이러한 책임에서 면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그들이 결성하는 노조는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지금부터 우리는 1970년대 일어났던 여성 노동운동 - 청계천변 피복 공장 근로자들의 노동투쟁(1971~79), 태광 산업 노동자들의 농성투쟁(1972~74), 반도상사 근로자들의 노조운동(1974), 제일제당 종업원들의 노조결성투쟁(1977),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노조투쟁(1976~79), 방림방적 근로자들의 권익투쟁(1977), 남영나일론 근로자들의 임금투쟁(1977), 인선사노동자들의 노조쟁의(1977~78), 해태제과 종업원들의 혹사반대투쟁(1979), YH무역 근로자들의 폐업반대투쟁(1979) - 중 대표적인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들의 내용을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당시 노동운동의 특징을 집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사건으로 알아보는 70년대 여성노동 운동
①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 불타버린 젊은 영혼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부근, 22살의 평화시장 내 한 피복업체의 재단사가 온몸에 불이 붙은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들을 혹사시키지 말라!” 고 외치며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전태일은 10살을 갓 넘어서부터 동대문시장과 서울역등에서 온갖 힘든 일을 해준 대가로 얼마 안 되는 푼돈을 벌어 오던 전군은 재단기술을 배워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들어갔다. 여기서 나이 어린 여공들이 숨 막히는 작업환경 속에서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했고, 동료직공들의 어려운 생활실태를 조사하여 기업주와 정부 노동당국 측에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아무도 알아주기 않는 하찮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전태일은 결국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많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분신자살을 결심한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전태일의 일기 中
전태일의 죽음은 이 나라의 노동운동사에 하나의 분기점을 이루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때까지 온갖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오던 수많은 근로자들을 자극하여,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의식을 일깨웠으며, 삶의 향상을 위해 투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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