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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I. 들어가며
한때 드라마 ‘허준’의 인기가 높았던 적이 있었다. 만들어진 허구에 불과한 드라마를 보며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의학은 병 치료가 최우선인 그래서 소위 ‘의술’이라 불리는 ‘서양 의학’이다. 이에 비해 사람을 구해내고 세상을 구하는 일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 한의학은 ‘인술’이라고 불린다. 바쁜 현대인에게 의술이 편리할지는 몰라도 자연과 인간을 함께 아우르는 인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현대인의 상황과 연결 지어 볼 때 허준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는 까닭을 찾아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현대 서양의학, 전통의학, 그리고 민간요법 등을 생각한다. 그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은 근대 서구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현대 서양의학이며, 이와 더불어 각 지역의 전통의학이 오래 전부터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전통의학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한의학, 인도의 아유르 베다(Ayur Veda) 의학과 히포크라테스의 전통을 잇고 있는 아랍권의 유나니(Unani) 의학을 꼽을 수 있으며, 이러한 전통의학들은 공통적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 깊은 철학을 이론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 인류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엄청난 의료 시혜인구와 함께 그 이론의 합리성 및 실제 임상효과의 측면에서 한의학은 가장 성공적인 전통의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들은 마치 서양 현대 과학만이 유일한 과학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서양과학은 역사적으로 서양인들이 선택했던 삶과 앎의 한 방식일 뿐이다. 특히 그 대상에 대한 파악이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체의 생명에 관한 의학은 더욱 그러하다. 즉, 인체의 무질서를 질서로 돌리 수만 있다면, 어떤 체계이든지 의학으로 선택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서양의학 외에도 세계 각 지역마다 다양한 전통의학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그 예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이미 전통의학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특히 일차 진료는 각 지역 전통의학의 몫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의학은 엄청나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양의학의 군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그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문화적인 차이는 무엇보다도 종교에서 비롯된다. 서양에는 여러 형태의 종교가 있지만,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역시 기독교를 들어야 할 것이다. 반면 동양에서는 유교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문화는 과학과 비과학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생각하는 문화인 반면, 유교 문화는 과학과 비과학을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문화이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문화는 보이는 것은 과학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신의 영역으로 미뤄 버린다. 반면 유교 문화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진리, 다시 말해 도(道)나 기(氣)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현대 서양의 물질문명이 동양을 크게 앞서는 것은 성격상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그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 동안 소외되고 경시되었던 유교 내지 동양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유가학설은 나름대로의 철학 사상적 기초가 있다. 유학은 모든 관심을 인간에 집중시킨다. 인생에 대한 체계적 반성을 통해 인학(仁學)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 체계를 내놓았다.
인학은 인성인도인생 가치인간 관계인격의 평등과 존엄 그리고 우주 본체천인 관계인식론학문 방법 등에 대해 독특한 탐구를 진행한다. 이처럼 내용이 풍부하고 범위가 광범한 사상 체계가 한의학에 끼친 영향과 작용은 심원하고 전면적이었다. 이것은 중국 문화의 다른 영역이 따라 올 수 없는 것이다.
유학과 의학의 학술 사상 체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분명히 가른다는 것은 실로 역사와 한의학의 전문가의 전문적인 식견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는 유가 문화와 그것이 의학과 갖는 관계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II. 왜 하필 유의인가?
먼저 유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유의(儒醫)는 유가문화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와 한의학이 결합된 것으로 그들은 의사라는 특수한 집단에 속하면서 선비라는 계층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유학과 의학의 두 가지 특성이 융합되어 있다. 유의라는 명칭은 송대 홍매의 『이견지』에 최초로 보이는데 유의에 관한 설은 대략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