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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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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국의 정보기관
Ⅰ. 서론
1. 유럽의 국가안보와 정보체계
2. 영국의 정보보안 체계의 기원과 발전
Ⅱ. 본론
1. 기과 편제
1) MI-5(SS)
2) MI-6(SIS)
3) 정보통신본부(GCHQ)
4) 국방정보참모부(Defense Intelligence Staff)
5)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
&국가범죄정보부(National Criminal Intelligence Service)
6) 기타 기관
2. 정보기관의 통제
3. 정보역량 강화 움직임
Ⅲ. 결론
Ⅳ. 참고 문헌
Ⅰ. 서론
1. 유럽의 국가안보와 정보체계
현재 국제관계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은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유럽의 질서 속에서 탄생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근대적 정보기관의 기원도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 각국 사이의 잦은 전쟁과 대립, 그리고 유럽 외 지역에서의 제국주의적 침략은 필연적으로 정보수요를 발생시켰고, 이에 따라 근대적 정보기관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등장한 정보기관은 지금까지 중요한 모델로 남아 있다. 바로 영국과 소련의 모델이다. 영국의 비밀정보국(SIS 혹은 MI-6)과 보안국(SS 혹은 MI-5)은 순수하게 정보의 수집과 분석 및 평가를 위해서 만들어진 정보기관들이다. 반면에 소련의 KGB는 그 기원을 러시아 혁명 이후 반혁명 세력의 동향을 감시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카(CHECA-‘반혁명 및 태업진압 전(全)러시아 특별위원회’를 의미한다)에 두고 있다. 체카는 대외 정보보다는 국내 보안의 필요성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정보보안 체계가 미국을 위시한 서유럽과 이스라엘의 모델이 되었다면, 소련의 정보보안 체계는 많은 제3세계 독재국가들의 모델이 되어 왔다.
유럽의 정보기관들은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전 세계 정보활동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 1920년대 미국에서는 여섯 개 기관이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 여섯 개 기관은 버킹검 궁, 백악관, 영국은행, 미국 연방은행, 바티칸, 그리고 영국 비밀정보부를 지칭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의 주도권은 미국과 소련에게로 넘어 갔고, 서 유렵의 국가들은 주도적 위치에서 한 계단 내려와야만 했다.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는 유럽의 정보기관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변화의 양상은 각국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은 1909년 정보보안 체계가 확립된 이래 비록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위상은 낮아졌지만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프랑스는 단절성과 연속성이 중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독일은 단절적 성격이 강하고 동독의 붕괴 이후에는 정보기관의 통합이라는 실험을 겪기도 했다.
2. 영국의 정보보안 체계의 기원과 발전
영국의 정보보안 체계의 기원은 1570년에 월싱햄이 엘리자베스 여왕 밑에서 해외 정보망을 구축한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인 정보보안 체계의 기원은 190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군정보부의 기원은 18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중앙정보기관의 기원은 1909년 대영제국 국방위원회의 분과위원회(Committee on Imperial Defence)의 건의에 따라 설립된 비밀첩보부에서 비롯된다. 공식명칭으로 대영제국 보안 정보국(Imperial Security Intelligence Service)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육군과와 해군과로 분리되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비밀첩보부의 편제는 국내과와 국외과로 재편되었다. 당시 비밀첩보부는 육군성 소속 군사작전총국의 특별 분과인 MO5의 통제하에 있으면서 세 가지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첫째, 공공기관과 외국 스파이들간의 차단막의 기능, 둘째, 공공기관과 해외 주재 영국 공작원간의 중개 기능, 셋째, 방첩 기능이 그것이다. 그 후 국내과는 영국 보안국(MI5)으로 변천되었다가 현재는 보안국으로 발전되었으며, 국외과도 국외 첩보부(MI6)로 되었다가 현재는 비밀정보국을 발전되었다. 하지만 보안국과 비밀정보국은 아직도 일반적으로 MI5와 MI6로 각각 불리고 있다.
1909년 비밀첩보부의 창설 당시 버논 켈 육군대위와 맨스필드 스미스-커밍 해군대령이 각각 육관과와 해군과의 지휘를 맡았다. 이후 조직개편에 따라 편제가 국내과와 국외과로 변경되면서 켈은 국내과, 커밍 대령은 국외과를 담당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비밀첩보부는 바깥으로는 주로 독일의 군비증강에 관련된 첩보활동을 전개하였고, 안으로는 영국 내에서 암약하던 12명의 스파이를 검거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비밀첩보부는 21명의 스파이를 체포하였으며,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35명의 스파이를 검거함으로써 1916년에 이르러서는 영국 내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는 더 이상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1916년 국내과와 국외과는 군사정보국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각각 MI5와 MI6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여기에서 MI는 Military Intelligence의 약어로써 이렇게 이름 붙여진 것은 이 기관들이 초창기 당시 군조직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외에도 MI-8(암호해독), MI-11(심리전 공작)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1921년 국외과는 외무성의 관할로 옮겨지게 되고 이때 비밀정보국(SIS)으로 개편된다. 한편 MI5는 1931년 아일랜드 테러분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영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모든 사안들을 담당하게 되면서 현재 정식 명칭인 보안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커밍은 1923년까지 MI5를 지휘하였으며 켈은 1940년까지 MI6의 국장으로 재직하였다.
보안조사위원
합동정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