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또 한번의 전쟁과 분단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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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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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또 한번의 전쟁과 분단을 통해 우리는 무엇 을 배웠는가?
◎625전쟁 직전 우리의 내외정세
북한이 소련과 중공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그 세력을 급격히 팽창시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남한을 둘러싼 정치적·외교적 상황은 매우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본 항복 당시 한반도의 경제상태는 92%의 전력, 71%의 석탄, 83%의 금속제품, 70%의 광석이 북한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며, 1948년 5월 14일을 기하여 북한이 남한에 대한 송전을 중단하자 남한 산업시설의 겨우 5%만이 가동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한 사회의 불안은 더욱 증대되었다. 1949년 9월까지 중국공산군은 중국대륙을 석권하고 국부군(장제스 휘하의 군대)을 대륙으로부터 축출함으로써 사실상 중국내전을 종결지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3월 소련을 방문해 조·소경제문화협정을 체결했고, 소련과 중국은 1950년 2월 우호동맹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은 소련과 중공 양 후원국으로부터 원조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 한편 1948년부터 시작된 미군 철수로 한반도 내의 남북한간의 군사력 균형은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북한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군사력 불균형에 못지 않게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을 할 수 있도록 자극했던 외교적인 사건이 계속되었다. 즉 1949년 3월 D. 맥아더 장군이 한 영국기자와의 회견에서 한반도가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음을 암시하는 설명을 한 것과, 1950년 1월 12일 워싱턴의 전국신문기자 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 당시 D.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의 연설 가운데 극동에서의 미국 방어선은 한반도를 배제, 대륙으로부터 후퇴를 뜻하는 이른바 애치슨라인을 공표함에 따라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듯한 징후를 보인 것이다. 또한 1950년 1월 9일 극히 소액의 대한군사원조법안이 미 하원에서 부결된 사건은 미국 국무부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이 한국 방어에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결국 이와 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의 정세는 북한이 남침할 경우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국내외 적으로 북한은 치밀한 전쟁준비를 해온 반면, 남한은 이승만의 허풍에 가까운 북진통일론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인해 전쟁에 대해 무방비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전쟁과 분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대한 조원들의 의견

분단국가 문제에 대한 가장 큰 논점은 바로 통일이다. 과연 분단국가 문제를 통일로써 풀 것인가, 아니면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분단국가’, ‘분단시대’라는 개념은 70,80년대에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그런 만큼 당시의 모든 논쟁은 분단된 두 국가의 관계형성에서 찾아야만 했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는 반공이라는 명분아래 무참히 짓밟혀졌었고, 경제는 북한보다 어떻게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일념이 성장위주정책에 영향을 미쳤었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한 한반도에 과연 과거의 개념이 효용성을 발휘할 것인가? 과거의 개념대로라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일’은 필수적인 과제였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한반도의 정세는 비단 한반도 내에서만 서로 영향을 받는 단계에서 벗어났다. 다시 말해, 적어도 남한으로서는 통일이 더 이상 만능 해결책이 아니게 된 것이다. 오히려 통일로 인해 생기는 통일 비용은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사회의 적잖은 불안감마저 일으키고 있다. 이제 통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한반도의 국제정세는 이 두 가지 갈림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는 통일이 분단국가 문제의 종착역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붕괴 위험성 때문이다. 북한의 외교 전략은 최근 몇 년째 핵무기를 초강대국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쓰는 이른바 ‘벼랑 끝 전술’로써 일관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전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미국의 압박에 무력해 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외교전에서 미국보다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동안 북한을 지원해왔던 러시아와 중국의 동태에 큰 변화가 일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완벽한 봉쇄를 의미하며, 국내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몰락을 의미한다. 결국에는 외국에 의해서든지 아니면, 북한 스스로 무너지든지 북한이 붕괴될 것은 기정사실화 될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지금까지의 국제정세를 보아 매우 현실적임에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북한 정권의 몰락은 갑작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아침에 정부 없는 빈 땅이 되어버린 한반도 북부지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역사책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외세의 점령. 북한 지역을 점령할 외세는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특히 신흥 강대국인 중국과 현 초강대국 미국 간의 열전(熱戰)이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막으려면 외세가 간섭하기 전에 남한과 북한이 통일에 대한 합의를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장 통일을 이룰 수는 없더라도, 북한이 붕괴 혹은 평화적, 흡수 통일이 됐던 간에 통일에 대한 대책을 미리 세운다면 한반도가 또다시 외세의 힘겨루기의 장으로 변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전쟁이 한국 역사에 남긴 것은 이념 전쟁의 허무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전쟁을 내전이라고 보든, 아니면 국제전이라고 보든 이념 전쟁이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좀 더 사실의 본질에 접근해 보자면, 이념은 단순한 허울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소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우두머리들. 그들의 목적은 세력 팽창에 있다. 두 초강대국들은 2차 대전이후 해방된 식민지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덕분에 한반도에는 두 개의 상충되는 이념 국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전쟁으로 이어진 해방전후사의 참극.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태의 본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과 소련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태였다. 두 국가들의 알력이 한국에서 증폭되고 결국은 그러한 갈등이 폭발된 것이 한국 전쟁이다. 해방이후 한국 국민들은 남과 북이 모두 이념의 소용돌이에 빠졌었다. 이러한 갈등을 조장한 것은 미국과 소련이었다. 한국의 지식인들과 지도층 거의 모두는 통일된 국가를 원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방해한 것은 바로 두 초강대국들이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여운형의 조선인민공화국을 처음부터 무시했었고, 좌우합작을 방해했었다.
결론은, 한국 전쟁은 이념이 명분 아래 초강대국들의 힘겨루기가 표출된 것이었다. 우리들은 앞으로의 역사를 살아가면서 무엇이 사건의 본질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건의 단순한 표피만을 본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모르는 것이 낳다. 한국 전쟁을 그저 이념 전쟁이라고 생각한다면 통일은 요원하다. 그보다는 초강대국들의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사책은 남과 북이 한국 전쟁에서 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우리가 만들어갈 앞으로는 역사는 남과 북이 협력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중 고등 학교 때부터 국사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싫어한 편이었다. 국사는 시험 때만 되면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만 하는 지겨운 과목이었다. 이런 내가 대학에 와서 사회변동과 역사의식과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역사관련 강의를 선택해서 들은 이유는 평생 국사를 싫어했으니 단 한번이라도 내가 선택해서 열심히 해보자 라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 어디 가서 흥미도 없는 지식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고, 젊은 나이에 좋아하는 것만 하다가 전반적인 교양수준도 떨어질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