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복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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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복식 문화
이 지구상에서 의복을 착용한 시작은 원죄가 있은 직후였다. 하와가 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여 나뭇잎으로 치마를 엮어 입었던 의복의 기원과는 아주 다르게 변하여서, 원시사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복은 외형적 형태나 소재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으며 그 변화와 함께한 사회의 변천과정을 간과할 수 없고, 그에 따른 문화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애초에 의복을 착용하는 목적은 어떤 면에서든 보호의 기능이 가장 컸다. 그러던 것이 농업혁명과 농노해방, 그리고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계급이 형성되고, 세련된 귀족 생활과 상업의 발달과 함께 도시의 발달 등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사회적 배경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예술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의복은 그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간접적인 도구로서 그들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다. 결국 의복의 변천사는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지적인 조건, 사회적인 변화의 거울이며 그 시대의 인간의 심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복식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은 인간생활의 풍성한 개화기를 생각하게 하며,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 등 생활에 관한 많은 문제가 어우러져 복식문화를 자극하였다. 서유럽이 근대화 되는 계기가 된 르네상스는 교역의 확장에 따라 상품의 수요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가내수공업이 공장제수공업으로 확대되었으며, 직물산업의 기술이 크게 개선되었고, 염색가공술의 발달로 상품이 계속 개발되면서 호화스러웠으며 직물의 부드러운 감촉은 귀족들의 미적 감각을 더욱 고조시켰다. 또한 중세말기에 유행하였던 동물의 털, 스트라이프 체크, 편직물, 금. 은. 색실을 이용한 자수, 다양한 종류의 레이스의 개발 등은 르네상스 복식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 되었다. 가내 수공업이 공장제 수공업 체제로 확대되는데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한 것이 직물 산업이었다. 이를 계기로 16세기가 되면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에 의한 자본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직물의 발전은 이에 관계된 이들에게 번영이 필수가 되도록 하였고 이 주요 작업장들은 플랑드르와 북부 프랑스에 몰려 있었다. 플랑드르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사회적 동요가 발생하는 것을 계기로 직물 산업은 브라반트 지방으로 이동되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지방의 부뤼셀에서는 모직물 공업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미 이 시기에 환전상이 있었으며 이는 후에 은행으로 변모되기 되었다. 프레데리크 들루슈, 새 유럽의 역사, 2005, 88-89
중세 복식의 복잡한 기교를 이미 경험한 르네상스인들은 그리스로마의 단순한 형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으며, 단지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는데 세기말에 유행한 남자 상위의 주름이나 여자 스커트의 주름이 이를 나타내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와 같은 기질은 복식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십자군 전쟁 때 군복의 칼자국이었던 슬래쉬가 장식요소의 하나로 성행하였는데, 슬래쉬는 찢어진 틈 사이로 다양한 색상의 천이나 흰 슈미즈가 보이게 하였고, 가장자리에 보석을 달아 움직일 때마다 펄럭거려 그 호화로움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 사치와 낭비가 너무 심해 여러 차례에 걸쳐 슬래쉬 금지령을 내렸지만 계속 유행되었다. 그러한 실루엣의 과장은 16세기에 더욱 심해졌으며 절대왕권의 기반이 확립되어 가고 경제적으로 융성해지자 귀족들과 부르주아 상인들은 그들의 권력과 재산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의상의 양감 및 외양의 화려함에서 찾으려 하였다. 이 시기에 있어 복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14세기까지의 신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고딕 시대에는 인간의 인체미를 변형시키지 않고 몸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나타내지는 편안한 의상을 착용했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서는 인간중심으로 변화되어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여, 남자들은 남성미를 강조하기 위해 어깨와 소매, 가슴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여자들은 여성미를 선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목둘레선을 가슴 깊이 파고 허리를 가늘게 조였다.
그와 같은 실루엣의 과장은 16세기에 와서 더욱 심해져 전성기 르네상스 양식을 이루게 된다. 코르피케나 스터머커 등의 몸통을 졸라매는 코르셋과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파팅게일 등 육체미를 강조하는 인공물이 사용되어, 높은 러프 칼라와 함께 기이한 외관을 보였다. 또한 남자들은 체형을 과도하게 부풀리기 위하여 패드와 주름을 사용하여 다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인체의 선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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