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글래드스톤 오닐 EUGENE O NE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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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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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EUGENE ONEILL
작가소개
유진 글래드스톤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1888∼1953)
오닐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미국 최고의 극작가’, ‘여러 가지 극적 실험을 통해 미국연극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극작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미국 극작가’, ‘사후 3년에 받은 상을 포함하여 퓰리처상을 4회 수상한 극작가’ 등의 찬사가 그의 이름에는 따라 다닌다.
오닐은 1888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연극배우였던 제임스 오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순회극단의 배우로 전국을 떠돌던 아버지를 따라 호텔을 전전하며 살다가 일곱 살 무렵에 기숙학교에 들어가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책을 읽거나 형에게 장문의 편지들을 쓰면서 지냈다. 1906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얼마 못 가서 퇴학당하고, 이후 6년간 바다에서 선원 노릇도 하고 남미와 뉴욕에서 부랑자로 떠돌며 인생 체험을 한다. 1912년에 그는 결핵에 걸려 6개월 동안 요양소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스트린드베리를 접한다. 오닐이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1913년 겨울에 스트린드베리를 읽게 되면서 나는 현대극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처음으로 극작가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라고 밝힌 것처럼 특히 스트린드베리와의 만남은 그를 극작가로 새로이 태어나게 한다. 아버지 제임스 오닐이 몸담았던 "고래고래 소리나 질러대는 과장되고 감상적인 통속극"을 경멸하면서 자란 그가 스트린드베리와 입센으로 대표되는 현대극을 통해 비로소 극의 예술성과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조지 피어스 베이커 교수의 워크샵 47 희곡 창작 강좌에서 습작 활동을 거친 후 오닐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현대극의 여러 형식들을 실험하며 20편의 장편과 수많은 중, 단편들을 써냈다. 대표작으로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 계열의 [지평선 너머], 니체와 프로이드, 융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계열의 [털북숭이 원숭이],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빌린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불출들의 달]과 [밤으로의 긴 여로], 이 밖에도 [안나 크리스티], [느릅나무 밑의 욕망], [기묘한 막간극], [아아! 황야], [얼음장수 오다] 등이 있다.
이러한 풍부한 작품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오닐의 사생활은 불행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불신으로 얼룩진 유년을 보냈던 오닐은 세 번의 결혼 생활에서 얻은 자신의 자식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다. 오닐의 재능을 물려받아 예일 대학교 영문학 교수가 된 장남 유진 오닐 2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딸 우나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찰리 채플린과 결혼하자 딸과 의절해 버렸다. 육체적으로는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형처럼 끊임없이 술의 유혹에 시달렸으며, 말년에는 소뇌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마비 증세와 우울증이 악화되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1953년 초겨울 무렵 그는 아내 칼로타의 도움을 받아 미완성 원고들을 모두 찢어버렸다. 완전하지 못한 원고들을 비평가들의 도마 위에 올리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의 작품을 다른 작가가 마저 완성하는 것은 더욱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말년에는 오랜 동반자였던 아내 칼로타와도 극심한 불화를 겪는 등 불행이 끊이지 않았다. 1953년 11월 27일, 그는 65세의 나이로 보스턴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는데, "빌어먹을 호텔 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죽는군."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현대 미국 연극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진 글래드스톤 오닐(1888~1953)은 1920년대까지 상업적 수준에 머물러 있던 미국 연극의 근대화와 예술적 승화를 촉진시킨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극작가로서의 오닐의 탄생이 곧 현대 미국 연극의 시초가 되었으며, 그가 얻은 국제적 명성이 미국 연극에 대한 최초의 국제적 인정이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1920년대 초까지 미국 연극은 흥행을 위주로 한 상업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오닐과 같은 젊은 극작가가 등장하여 순수 연극의 실현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예술 양식으로서의 그 존재를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1916년 「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라는 단막극이 프로빈스타운 극단의 성창 극장 The Wharf Theatre에서 성공적으로 공연되고 나서부터 오닐은 잠재력 있는 신진 극작가로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최초의 장막극『지평선 너머』를 위시하여 『황제존스』『안나 크리스티』등 1920년대에 발표된 작품을 통해 그는 계속해서 오닐 신화를 형성해나갔다. 오늘은 40여 년에 걸친 그이 극작 기간 동안 62편의 희곡 원고를 썼는데 11편은 소멸되었고 현재 51편이 남아 있다. 이 중 『지평선 너머』『안나 크리스티』『이상한 막간극』『밤으로의 긴 여로』등의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유례없이 네 번이나 받았고, 1936년에는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로 미국 극작가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오닐의 극작 시기를 대개 세 단계로 나누고 각 시기의 작품들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1913년 그의 첫 작품 「정숙한 아내」를 비롯한 1919년까지의 단막극 중심의 작품들과 오닐의 최초의 장막극『지평선 너머』를 포함하여 자연주의 작품 시기로 2단계는 1920년 『황제 존즈』부터 1933년 『끝없는 나날들』까지의 표현주의 작품 시기로 3단계 로는 1940년대의 『빙하인 오다』와 『밤으로의 긴 여로』등의 5편을 포함한 자연주의 계열의 말기 작품 시기로 나누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그의 작품의 3기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① 제1기: 수법은 사실적(寫實的)이나 작품에 흐르는 정조(情調)는 낭만적이며, 물의 생활을 동경하는 선원을 묘사한 《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를 비롯하여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단막물이 많다.
② 제2기: 수법적·사상적으로 원숙기를 나타내어 《황제 존스》(1921)에서는 공포를 상징하는 데 점차 빨라지는 북소리를 썼고, 《털원숭이》(1922)에서는 작가의 사회적 관심을 보였다. 또 《느릅나무 밑의 욕망 Desire under the Elms》(1924)은 뉴잉글랜드의 농가를 배경으로 늙은 아버지와 세 아들, 그리고 젊은 계모를 중심으로 끝없는 물욕(物欲)과 육욕의 아귀다툼을 사실적으로 그려 놓았다.《위대한 신(神) 브라운》(1926)에서는 가면을 사용하였고, 2부 9막의 대작 《기묘한 막간극(幕間劇)》(1928)에서는 자신의 내심을 말로 나타내는 독백(그는 interludism이라 불렀다)을 채택하였다. 나아가 《상복(喪服)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Mourning Becomes Electra》(1931)는 그리스 비극을 본떠서 제작한 3부 13막의 야심작이지만, 그 뒤 차차 심리적·상징적 미로(迷路)에 빠져든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