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김연수와 농민 을 통해 살펴본 해방전후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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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김연수와 농민 을 통해 살펴본 해방전후기의 모습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해방전후사의 인식

Ⅰ. 들어가며
수당 김연수와 농민 김무덕 이라는 동갑내기 두 인물을 통해 동시대의 극과극의 상황을 재연해 보았습니다. 같은 시대속에서 둘의 유일한 차이점은 집안의 부유한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후 김연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끼며 친일행위를 정당화시키게 되고, 농민 김무덕은 하층민의 고충을 느끼며 친일행위를 경멸하게 됩니다.
이 두 인물을 통해 일제치하 당시의 양극단의 삶이 어떤지, 친일행위를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 해방후엔 서로 어떤 모습을 바라게 되는지, 실제 현실은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를 살펴보았으며 마지막으로 지금 시점에서의 ‘나’ 를 통해 그때 당시의 주요 사건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평가해보고 과거사문제와 사회정의 문제간의 연관성을 제기해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재연하게 되는 시기는 1930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로 1930년 이전시기는 간략한 소개를 통해 3인칭 시점으로, 30~50년은 일기형식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해 보았습니다.
Ⅱ. 김연수(1896. 8. 25 ~ 1979. 12. 4)
1. 간략한 소개
대기업 삼양사 설립자이자 전 삼양사 명예회장이며 경성방직 등 우리나라 원로 대기업을 이끌어온 김연수는 1896년 호남 최대의 거부 김경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연수는 훗날 동아일보 사장이자 보성전문학교 창립자인 인촌 김성수 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김연수의 집은 6살때 집에 서당을 차릴정도로 부유했으며 1911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1921년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한국인 최초로 졸업하고 귀국한 후엔 형 김성수가 설립한 경성직뉴의 전무를, 경성방직 상무를 맡아 본격적으로 기업운영을 시작해왔다.
이때부터의 기업운영경험과 집안 재산 및 형이 축적해 놓은 자본을 바탕으로 김연수는 본격적으로 기업을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특히 땅에 대한 애착이 특별히 강했던 김연수는 토지를 대규모로 매입하였고 이를 농장형 경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1924년 삼수사를 설립하였다. 이후 이러한 농장형 토지의 규모를 계속해서 늘려가 조선 최대의 토지소유자가 되기도 한다.
김연수는 동시에 일본계 은행인 식산은행과 점차 관계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이는 향후 기업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제의 각종 정책에의 참여 및 협조 또한 용이하게 해주는 밑바탕이 된다.
이렇게 김연수는 귀국후 1920년대를 삼수사 라는 대규모 농장 설립과 경성방직이라는 기업을 운영하고 앞으로의 기업확장이 가능하도록 그 기초를 닦는데에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