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朴寅煥)론 - 생애 및 활동 & 시적 지향성과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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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朴寅煥)론 - 생애 및 활동 & 시적 지향성과 모더니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인환(朴寅煥)론
1. 생애 및 활동 (1926~1956)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1세 때까지는 시골에서 자랐고, 1936년 사업차 상경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이주하여 생활하게 되는데, 14세 때 덕수 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경기 공립중학교에 입학하나 16세 때 영화에 미쳐 학교에서 쫓겨나고 다시 한성학교에 야학을 다니게 된다. 그 후 17세가 되던 해 황해도 재령의 명신 중학교 4학년에 편입, 1944년 졸업을 하고, 같은 해 부모의 뜻에 따라 평양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1945년 광복과 더불어 학교를 중단하고 상경, 종로 3가 낙원동 입구에라는 이름의 서점을 개업하면서 당시의 문단인들과의 교류를 시작한다. 이 를 중심으로 당시의 많은 전위문학의 문인들과 교우를 갖게 되었고 21세가 되는 1946년 12월 의 기자 송지영의 주선으로 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공식 진출한다. 이 후 1948년 김경린, 양병식, 김수영 등과 함께 동인지 1집을 발간하게 되고, 1949년에는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과 함께 5인 합동 시집 을 발간한다. 그 후 6·25가 발발하였지만 박인환은 피난을 가지 못하고 9·28 수복 때 까지 적치하의 지하생활을 하게 되며, 수복 3일전에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딸을 낳기도 한다. 그러다 1·4후퇴가 임박한 1950년 12월 8일 가족과 함께 대구로 피난을 떠났다. 이 때 그는 경향신문의 기자로 활동하여 1951년 5월부터는 육군 종군 작가단에 참가하여 고향인 인제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 후 1951년 가족들을 부산으로 이주시키면서 모더니스트들의 모임인 ‘후반기’ 동인회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1952년 이래 대한해운공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 1955년 3월 회사의 화물선 의 사무장이 되어 미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게 되고 이 여행 과정에서 보고 느낀 내용을 1955년 10월 자신이 엮은 선시집 속의 아메리카 시초에 적어 발표하기도 한다. 그 후 1년이 채 못 되어 1956년 3월 20일 이상 추모 행사 때에 술을 마시고 심장마비로 눈을 감는다.
2. 시적 지향성과 모더니즘 모더니즘이란 과거의 주정적 낡은 내용과 형식에서 벗어나 주지적, 현대적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추구하려는 20세기 예술의 제반유파(입체파, 미래파, 다다이즘, 쉬르리얼리즘, 이미지즘) 등 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더니즘이란 말 자체는 현대 예술의 일반적 특질을 가리키는 광범위하면서 막연한 명칭이다.
박인환의 시세계는 모더니즘을 지향한다. 경기공립중학교에서 영화에 심취하던 그가 본 영화는 대부분 미국 및 유럽의 작품들이었고 그러한 것은 현대의 가장 진전된 과학과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상기할 때 이 시기의 경험은 박인환에게 모더니즘을 시적지향성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평양의학전문대학을 그만두고 해방 후 그가 직접 연 ‘마리서사’의 운영은 그에게 있어 모더니스트의 발판을 마련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실제로 당시 ‘마리서사’에는 모더니즘과 관련된 서적들로 즐비했으며 김기림, 김관균, 오장환 등의 1930년대 모더니스트들이 왕래하는 전위예술의 소굴로 박인환의 모더니즘적 성향을 확인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가 이 서점을 정리하고 김경린, 김수영 등이 주축이 되어 과 그 2집격인 등의 성격을 통해서도 그리고 전쟁 중 부산에서 조직된 후반기 동인의 성격을 통해서 그의 모더니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모더니즘의 성향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선두주자였던 김기림의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인데 김기림은 당시의 카프의 리얼리즘에 대항하여 문학주의를 표방하면서 문학 형식의 실험과 언어감각의 혁신을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 문학을 현실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언어의 건축물’로 인식하면서 창작의 방향을 문학적 재료의 가공기술 혁신 쪽에 두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인환을 비롯한 김경린 등의 후기 모더니스트들은 그러한 주지적 방법에 대해 비판하여 인간의 정신과 행동의 문제를 담아내야 한다는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인환의 모더니즘적 면모는 방법론적인 측면보다는 의식지향적인 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한다. 박민수(1990), ‘박인환론’, 관동향토문화연구 8권
3. 작품 경향과 문학적 특징
1) 시적 편력
1945년 관복은 박인환이 20세의 성년에 이르는 때로서, 이때부터 박인환은 문학에 뜻을 두고 본격적으로 문단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박인환의 시적 변천은 그가 시단에 나온 1946년부터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한 1949년 무렵 까지를 그의 시적 형성기로 잡을 수 있다. 그 후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로부터 1955년 3월 박인환이 미국 여행을 떠나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묶어 중기로 보고, 이 시기의 작품들을 ‘전후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는 동인으로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김경린, 김차영, 이봉래, 조향, 김규동 등과 동인 를 조직하면서 모더니즘 성향의 문학적 의의를 부여하려는 지적 노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1955년 미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한 후에 그 여행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역은 속에 있는 의 시편들과 이후의 시를 묶어 후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그의 시는 현대 문명을 다루면서 비판의식과 도시적 서정을 함께 표현하려 하고 있다.
2) 초기 - 비판적 현실주의
박인환의 문단 출발기에 쓰인 작품들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현실주의적 상상력과 그에 따른 현실 비판적 태도,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래 전망의 긍정적 자세 등이다. 그의 초기 작품들 중에 과 는 특이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준다.
(가) 동양의 오케스트라/가메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오 약소민족/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삼백년동안 너의 자원은/구미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살 수 없게 되었다/그러는 사이 가메란은 미친듯이 울었다//- 중략 -//참혹한 몇 달이 지나면/피흘린 자바섬에는/붉은 칸나꽃이 피려니/죽음의 보람은 남해의 태양처럼/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려니/해류가 부딪치는 모든 육지에선/거룩한 인도네시아 인민의 내일을 축복하리라//(이하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