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朴寅煥)론 - 모던이즘과 후반기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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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인환(朴寅煥)론
1. 생애와 문학 활동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박광선은 중등교육을 마친 사람으로 면사무소에 다니고 있었는데, 토지도 어느 정도 소유한 시골 사람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다. 인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박인환은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 교육을 위해 면사무소를 그만두고 서울로 생활터전을 옮기며 사업을 시작한다. 가족들이 인제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그는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한다. 1939년 박인환은 경기공립중학교로 진학하는데, 이 무렵 영화와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어 공부 대신에 일어로 번역된 세계문학전집과 일본 상징파시인들의 시집을 열독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기중학을 중퇴한 그는 한성학교 야간부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 편입하여 그곳을 졸업한다. 졸업 후에 부친의 강요로 3년제 관립학교인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하지만, 해방이 되자마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내려온다.
종로 3가 낙원동 입구에 라는 이름의 서점을 개업하면서 당시의 문단인들과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책을 팔겠다는 생각보다 단순히 책을 즐기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서점이었고 여기에서 많은 문학인들과의 만남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박인환이 영화에 심취하였었다는 점, 스스로가 개업하여 경영한 서점에 진열된 책들이 대부분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외국 문학 서적이라는 점, 그리고 를 중심으로 당대의 많은 문인들과 교류를 가졌다는 점 등은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교류의 과정을 거치면서 박인환은 21세가 되는 1946년 12월, 역시 에 들르던 기자 송지영의 주선으로 라는 작품을 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공식 진출한다. 문단에 공식 진출한 이후 6 25전쟁 이전까지에 있어 박인환은 1948년 김경린, 양병식, 김수영, 임호권, 김병욱 등과 함께 동이지 1집을 발간하게 되고, 1949년에는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과 함께 5인 합동 시집 을 발간한다.
그 후 6 25가 발발하였지만 박인환은 피난을 가지 못하고 9 28 수복 때 까지 적치하의 지하생활을 하게 되며, 수복 3일전에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딸을 낳기도 한다. 그러다 1 4후퇴가 임박한 1950년 12월 8일 가족과 함께 대구로 피난을 떠났다. 이 때 그는 경향신문의 기자로 활동하여 1951년 5월부터는 육군 종군 작가단에 참가하여 고향인 인제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 후 1951년 가족들을 부산으로 이주시키면서 모더니스트들의 모임인 ‘후반기’ 동인회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1952년 이래 대한해운공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 1955년 3월 회사의 화물선 의 사무장이 되어 미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게 되고 이 여행 과정에서 보고 느낀 내용을 1955년 10월 자신이 엮은 속의 에 적어 발표하기도 한다. 그 후 1년이 채 못 되어 1956년 3월 20일 이상 추모 행사 때에 술을 마시고 심장마비로 눈을 감는다. 1976년 그의 20주기를 맞아 장남 세형이 를 간행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등이 있다.
2. 모더니즘 모더니즘이란 과거의 주정적 낡은 내용과 형식에서 벗어나 주지적, 현대적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추구하려는 20세기 예술의 제반유파(입체파, 미래파, 다다이즘, 슈르리얼리즘, 이미지즘) 등 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과 후반기 동인
6.25 전쟁 전후시기에 이르면 청록파의 시로 대표되는 전통 지향성의 서정시는 그 기세가 약화되고 1930년대의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등이 추구하던 시적 방법과 정신을 이어받는 모더니즘시가 등장한다.
이러한 모더니즘 시는 후반기 동인들에 의해 주로 씌어졌는데 당시 동인은 김경린, 김병욱, 박인환, 임호권, 김경희 등이었다. 후반기 동인회의 중요성은, 해방공간에서부터 1950년대까지에 이르는 전후시의 창작 주체로 활동하면서 식민지시대의 시와 현대시의 시사적 고리의 역할을 담당했다 김재홍(1978), 『한국전쟁과 현대시의 응전력』, 평민사.
는 데에 있다. 김경린, 조향의 경우는 30년대의 김기림처럼 도시 문명의 표현만을 시에 옮겨 놓았지만, 박인환은 도시문명의 이면과 그 그늘에 위치한 정서를 표출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름을 보인다.
후반기 동인들의 모더니즘에 대한 열정은 산호장과 도시문화사에서 각각 발간된 『신시론』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으로 묶여진다. 이들 중 한가운데에 위치한 박인환은 영미의 두 시인 W.H.오든과 스테픈 스펜더의 영향을 중시하고 있다. 김병택(2003), 『한국 현대시인의 현실인식』, 새미.
그에 의하면 오든은 시 쓰는 것을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 세계 풍조를 그대로 묘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시인이었으며, 스펜더를 "시작 이외에 정치와 사회에 큰 관심을 경주하여 시인이란 그 사회의 사람들을 계몽하여 지도하는 특별한 임무를 지닌,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인간"이었다.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의 시를 썼던 시인이다. 이 점이 바로 박인환으로 하여금 관심을 가지게 한 이유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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