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죽을 권리, 안락사 옳은 것인가- 안락사, 존엄사란 무엇인가,안락사의 사례,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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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존엄하게 죽을 권리, 안락사 옳은 것인가-
안락사, 존엄사란 무엇인가
먼저 안락사란 병자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서 안락하게 죽게 하는 것을 뜻한다. 영어의 euthanasia는 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안락사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순수한 안락사로 죽음의 고통완화를 목적으로 모르핀 투여가 행하여지며, 그것이 병자 생명의 단축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이다. 두 번째로 간접적 안락사는 그와 같은 조치가 불가피하게 병자의 생명을 약간 단축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안락사로 적극적인 의료조치를 강구해도 병자의 생명을 약간밖에 연장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오로지 그에게 고통을 주기만 하는 경우이며, 그 조치를 행하지 않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적극적 안락사는 병자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끊음으로써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경우이며, 본래의 안락사나 좁은 의미의 안락사라고도 한다.
다음으로, 존엄사란 안락사의 목적이 병자를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점에 있는데 반해서, 병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존엄사(death with dignity) 또는 자연사 (natural death)이다. 이는 회복의 가망이 없는 병자에게 무익한 연명조치를 계속하는 것을 멈추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행위로, 생명연장을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부작위에 의한 안락사와 유사한 개념이다. 그러나 존엄사는 인공호흡기의 스위치를 끊는 등의 작위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병자는 의식불명이며 연명조치 중단의 가부에 대해서 의사를 표명할 능력이 없고 또한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통상이며, 생명연장 조치를 계속하면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서 생명을 유지하는 예도 있는 점 등에서 부작위에 의한 안락사는 물론, 다른 안락사의 유형과도 다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락사 [安樂死, euthanasia]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인용하였다.
기사에서 살펴 본 안락사의 사례
안락사에 대한 정의에 대해 살펴본 후 안락사에 대한 최근기사 하나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 기사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영국 고등법원이 장애를 가진 12살 딸의 생을 마감시킬 권한을 그의 어머니에게 부여해 영국 내에서 다시금 장애인과 안락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영국 내 다수 매체에 의하면 영군 고등법원이 8월 샬럿 피츠모리스라는 어머니가 자신의 12살 난 딸 낸시 피츠모리스의 생명연장을 위한 수화수 공급을 중단하고자 영양관을 제거해 달라는 요청을 승인한 것이다.
이전까지 영국에서의 선례에 따르면, 안락사가 고려되기 위해서는 환자가 불치병을 지니고 있거나 생명연장 인공호흡을 필요로 해야만 했다. 낸시의 경우는 이 두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법원은 기존 선례를 깨고 안락사를 허용했다. 법원의 승인 이후 며칠 뒤 낸시는 생을 마감했고, 이후 10월 말 낸시의 부모가 이와 유사한 결정이 법원의 개입 없이도 부모와 의사에 의해 이뤄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면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대부분의 영국 언론들은 낸시의 어머니 피츠모리스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녀의 선택을 지지했다. 특히 지는 낸시가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마실 수 없었다. 하루 24시간의 병원 돌봄을 필요로 하고 튜브에 의해 음식물과 물과 약이 투여되어야 할 만큼 그녀의 삶의 질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라고 서술했다.
하지만 자폐인자기옹호네트워크(Autistic Self-Advocacy Network, ASAN)라는 단체는 성명을 내고 이런 여론에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ASAN은 “이 사건을 다룬 언론들이 아이의 장애로 인해 그녀의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식의 암시를 주는 등 대단히 무책임했다”며 “영양관을 사용하거나 낸시와 비슷한 조건을 경험하는 많은 장애인들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며 그들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낸시의 안락사는 10월 초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던 브리트니 메이너드(Brittany Maynard)의 의사조력 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 사건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29세 여성으로 뇌종양을 갖고 있던 메이너드는 합법적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안락사를 합법화하고 있는 오리건 주로 이주했다. 이처럼 메이너드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안락사를 결정한 반면, 낸시는 오로지 어머니의 결정에 의해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이다. BeMinor - ‘영국법원, 어머니에게 12살 장애 딸 안락사 허용’- 하금철 기자(2014년 11얼 19일 기사인용)
이처럼 안락사에 대한 의견은 항상 찬반 논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나라면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참 어려운 일 같다. 낸시의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어렵고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딸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죽고 싶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딸의 의사 없이 이러한 결정을 한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딸의 삶을 보잘 것 없다는 식의 질에 대해 논한 것은 잘못된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라도 삶을 영위하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