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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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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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목 차
1. 토마스 홉스의 생애와 주요 저작
2. 홉스의 진리관과 철학적 탐구방법의 특징
3. 인간의 본성 : 자연상태와 이기적 생존욕
4. 자연법과 사회계약론
5. 국가(리바이어던)와 법, 그리고 통치자
6. 홉스에 대한 비판
1. 토마스 홉스의 생애와 주요 저작
1.1. 생애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영국의 한 시골목사의 아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숙부 프랜시스 홉스의 손에 의하여 양육되어 1603년 옥스퍼드 대학의 매그덜 학교(Magdalen Hall)에 입학하여 거기서 청교도 교육과 전통적인 논리학, 스콜라 철학, 자연학 등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학교 교과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1608년 대학을 졸업하자 그는 학장의 추천에 의해서 디밴셔 백작(Earl of Devanshire)가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그 주인은 홉스의 평생의 보호자 및 후원자가 되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다시없는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그 백작의 저택에는 대학 도서관 못지않은 풍부한 장서가 있었고, 또 많은 여가가 있었으므로 마음껏 충실한 학구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집에는 항상 유력한 정치인들이 모여들어 정치를 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정치에 관한 많은 실제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분위기에서 살 수 있었다.
1610년 홉스는 디밴셔 백작을 따라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되었다. 이때는 종교전쟁으로 전 유럽이 혼란스러운 동란상태에 있었던 때이므로, 그 전란을 목격한 것이 홉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1629년 그는 훌륭한 보호자였던 디밴셔 백작이 죽자, 홉스는 그 집을 나와 저베이스 클리프턴 경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유럽을 여행하였을 때 비로소 유클리드(Euclid) 기하학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정확하고 수학적인 방법으로 정치학을 창시해 보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후 기하학에는 이성만이 지배하지만, 인간행동에는 정욕이 지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 의지와 지각의 문제를 별도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631년 다시 디밴셔 백작가로 돌아가서 세번째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 파리는 유럽에 있어서 신흥과학의 중심지였는데, 그 학문적 중심지는 프란체스코파 수도사인 마리 마르센의 서재였다고 한다. 그곳은 여러 과학자와 사상가가 모여서 매일같이 새로운 연구에 관한 보고가 들어오고 토의되는 장소였으므로, 홉스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매일 그곳을 방문하였다. 또 이탈리아로 가서 갈릴레이를 만나보고 많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1636년 귀국했을 때 그의 철학적 태도는 이미 확고히 수립되어 있었다. 그것은 곧 유물론, 유명론, 자연주의적인 인간학 및 절대적인 국가주권론 등이다. 1640년에는 「법의 원리(The Eliments of Law)」를 썼는데, 거기서는 국왕과 교회, 국왕과 의회의 관계 및 주권 분할의 불가능성과 왕의 절대권을 명석한 논리로써 논하였다.
1640년 의회에서 왕권 옹호자에 대한 처벌을 결의했다는 소식을 듣자, 홉스는 재빨리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그는 1640년부터 1651년까지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생겼던 정치적인 소요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당파를 편들었으며, 자연법과 국법의 원리를 왕당의 입장에서 해석했었다. 그러나 한편 크롬웰의 신생공화국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갖고 홉스가 새로운 국가의 전도를 축하하면서 쓴 것이 그 유명한 「리바이어던」이었다. 이 저서로써 홉스는 왕당파의 미움을 받아 불충과 신의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궁정출입이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광신자 및 프랑스 관헌의 박해 속에서 지내다 1650년 본국 의회에서 대사령이 내려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1655년에 「물체론」, 1658년 「인간론」을 쓰는 등 90세가 넘도록 근면한 학구생활을 계속하다가 1679년 11월 4일 91세의 고령으로 일생을 마쳤다.
1.2. 주요 저작
홉스의 주저는 「철학원론」(Elementa philosophiae)이다. 이 책의 제 3부 「국가론」(De cive)이 먼저 나오고(1642), 제 1부 「물체론」(De corpore)은 1655년에 간행되었다. 그리고 제2부 「인간론」(Dehomine)은 1658년에 간행되었다.
법철학과 국가철학에 관한 그의 견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