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장기의 명칭, 장기의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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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기
장기의 명칭
장기(將棋)는 두 사람이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알을 번갈아가며 두어서 승부를 내는 민속오락으로 우리의 고문에 상희(象戱)라고 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의 문헌에 장기라는 말이 보인다. 이 장기는 바둑과 더불어 기박(棋博)이라 하며,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한가롭기만 하면 즐길 수 있는 진법(陣法)놀이이다.
장(將, 王 : 楚漢)은 각 한 짝, 차(車)포(包)마(馬)상(象)사(士)는 각각 두 짝, 졸(졸, 병)은 각 다섯 짝으로, 한쪽은 16짝이며, 양쪽을 합하여 32짝을 가로 10줄, 세로 9줄로 그려진 네모꼴의 장기판에 포진시켜 적의 장(왕)을 진퇴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승패를 결정하는 추리와 연상(聯想)과 적수(敵手)의 심리를 이용하는 지능적 오락이다.
나무토막에 글씨를 쓰고 그것을 조각한 알〔棋〕로 적의 장(왕)을 꼼짝 못하게 포위하여 승패를 겨루는 까닭으로 그 명칭을 장기라고 붙였다 한다. 상희라는 이름은 장기의 발생기원이 코끼리가 많고 코끼리를 숭앙하는 불교국인 인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 코끼리는 몸집이 크고 행동도 느릿느릿 육중하며 믿음직스러우므로 잔재주를 잘 부리고 행동을 경솔히 하는 인간들도 이 코끼리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상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속설도 있다.
서거정(徐居正 ; 14201488)의 《필원잡기 筆苑雜記》나 《세조실록 世祖實錄》등에는 상희라는 표현 아래 장기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고, 중종대(中宗代) 심수경(沈守慶)의 《유한잡록》에 잡기(雜技)를 설명하는 가운데 비로소 장기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다른 기록에 의하면 장기의 명칭이 개정되기 전에는 혁기(奕棋), 상기(象棋)등의 명칭도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장기는 바둑과 쌍벽을 이루는 보편적인 대중오락이지만 여러면에서 바둑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바둑이 조용하고 점잖은 놀이인데 대하여 장기는 활발하고 서민적인 놀이이다. 그리고 바둑은 대개 실내에서 두게 되지만 장기는 옥외에서 많이 둔다. 특히 무더운 한 여름 서늘한 정자 나무 아래에서 반나(半裸)의 노인들이 장기판을 둘러싸고 흥겨워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원풍경의 한 장면을 이루어왔다.
장기의 역사
장기는 BC 200~AD 300년 무렵 인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인도 고대왕국의 어떤 왕이 바라문의 고승에게 <생각을 깊이 하고 앞을 내다보는 슬기를 가지게 하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놀이를 만들라>고 명하였는데, 고승은 이 조건에 걸맞는 전쟁형식을 본떠 장기를 창안하였다고 한다. 장기의 어원은 차투랑가(chaturanga)라는 산스크리트에서 비롯되었고, 상희(象戱)상기상혁(象奕)이라고도 하였다. 이 산스크리트 어원(chaturanga의 chatur는 4, anga는 組를 뜻함)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4사람이 놀이를 했는데, 당시의 인도군대 편제가 코끼리부대(象隊)기병대전차대보병대의 4군 편제였었기 때문이다. 또 <상희>라는 이름의 유래도 발생지 인도가 코끼리가 많고 그것을 숭앙하는 불교국이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2세기에 이르러 4인제였던 장기는 2인제로 바뀌었고, 놀이방법도 주사위를 던져 장기짝을 놓던 종래 방식에서 오로지 지혜를 짜서 두는 방법으로 변하였다. 장기는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唐)나라 말기에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12세기에 이르러 오늘날과 비슷한 놀이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장기는 전래된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서, 중국장기는 장기판 중앙에 황하를 뜻하는 경계선이 있고, 양진영의 궁(宮)이 장(將, 黑)과 수(帥, 紅)로 되어 있으며, 상(象)의 행마법이 조금 다르다. 반면 한국장기가 중국장기와 달리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고조 유방(劉邦)의 각축전을 본뜬 이유와 북한에서 한(漢)을 장(將)으로, 초(楚)를 관(官)으로 바꾼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이에 비해 일본장기는 동남아 계통의 장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궁이 따로 없이 장기짝을 궁밭에 두고 금(金)옥(玉) 따위의 귀중품 이름을 붙인 것이 한국중국과 비교된다. 이 밖에도 인도의 장기는 페르시아와 아랍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전래되어 체스라고 부르는 서양장기로 변하였는데, 현재와 같은 규칙이 완성된 것은 15세기 무렵이었다. 한국의 장기 역사는 최남선(崔南善)의 《백과사전》 <유희편(遊戱篇)>에 의하면, 중국 송(宋)나라 때 처음 고려에 전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른 문헌으로는 조선 전기 문인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와 《세조실록(世祖實錄)》에 상희라는 명칭으로 장기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고, 중종 때 심수경(沈守慶)의 《청천당유한록(聽天堂遺閑錄)》에 잡기를 설명하면서 비로소 장기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보인다. 현재의 장기 역사는 다소 늦어져 광복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장기의 유래
장기는 약 4,0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인도의 불교도들이 전쟁이나 살생을 금하는 계율 때문에 인간본연의 어떤 파괴본능을 달래고, 수도를 하는 시간 외에 잠시라도 세속에 흐르기 쉬운 잡념을 떨어버리기 위해 전쟁을 모의(模擬)한 소재로 장기를 발명하였다고 하며, 또 일설에 미얀마 사람들은 자기네의 고대국 타이링의 왕비가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왕을 지극히 사랑한 왕비가 전쟁만을 일삼고 늘 싸움터에만 나다니는 왕을 궁중에 머물게 하기 위해 궁리 끝에 만든 것이라고 주장 하고 있다. 물론 말의 형태가 달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장기의 발상지는 중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장기조각(말) 자체가 초(楚), 한(漢)으로 되었고,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 유방(劉邦)의 각축전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약 2,000년 전 삼국시대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