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알몸 박정희 최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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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최상천
도서관에서 책을 찾다가 제목이 끌려 읽게 되었다. 책을 뒤적거리다보니 마침 박정희에 대해 상당히 안 좋게 쓴 글 같아서 바로 빌리게 되었다. 나는 박정희를 좋게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읽는 중간중간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결론부터 말하면 끝까지 읽기는 정말 힘들었다. 읽기 힘들었던 이유는 나하고 저자가 생각하는 바가 달라서이기도 했지만 저자가 사용하는 단어라던가 어투가 상당히 질이 낮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비판을 하더라도 어떤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선의 경계를 넘었다 들어왔다 한다. 그리고 책에 삽입된 일화라던가 주변 인물들의 증언 같은 경우에는 아직 그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내용도 있는 것 같다. 그 점을 빼면 내용 자체는 내가 몰랐던 내용이 많아서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다음 문단부터는 모든 문장 앞에 ‘이 책에 따르면’ 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
박정희는 출생부터 남달랐다. 박정희를 임신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태아를 죽이기 위해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썼다. 그의 형 한생이 정신지체로 태어나서 고생하는 것을 눈으로 보아 왔기 때문에 박정희에게는 그런 고통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때문에 박정희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의 목숨을 건 사투를 벌어야 했고, 그 출생 전쟁의 상처로 인해 대구사범학교로, 일본군 사관학교로, 꿈과 희망을 찾아 ‘저 세상’ 으로 달려가게 된다. 박정희가 무차별 폭력을 일삼는 정복자로 변신한 것은 구미보통학교 3학년 때의 급장 취임을 분수령으로 삼을 수 있다. 당시 3학년 때부터 학업 성적이 1등인 학생이 자동으로 급장이 되는 규정이 있었고, 이는 공부는 잘하지만 돈도 배경도 없는 아이에게 더없이 유리한 제도였다. 당시는 일제시대 이므로 공부를 제일 잘 한다는 것은 일본어, 일본사, 천황숭배를 잘 한다는 이야기 이므로 박정희는 이 때 이미 ‘1등 황국신민’의 위치에 올라섰다.
박정희가 인생의 길잡이로 삼은 것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의 신나는 정복 전쟁과 화려한 황제 등극은 박정희를 자극했고,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짬이 나면 를 읽었다. 나폴레옹이 이룬 3대 정복. 즉, 정권 정복, 시민주권 정복, 이웃 나라 정복 중에서 박정희는 두 가지는 확실하게 이뤘다. 5 16 군사정변으로 4월 혁명을 정복하고, 유신으로 시민주권을 정복했다. 박정희는 군사정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순신의 성웅화를 추진했고 이는 국보 지정, 이순신 작품집 번역 발간, 이순신 이야기 글짓기 대회, 각종 기념행사 등으로 나타났다.
다시 조금 앞으로 가 보면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했지만 5년 내내 늘 혼자였다. 이는 박정희가 사범학교에서는 뚜렷한 동기와 목표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머릿속에는 정복과 피정복, 지배와 복종 등만 있을 뿐이었기 때문에 대구사범학교의 엘리트식 교육은 맞지 않았다. 결국 박정희는 천황주의에 눈을 뜨면서 교사의 직업을 버리고 ‘진충보국 멸사봉공’ 이라고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만주 군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1942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편입한다. 이미 다카키 마사오로 이름까지 바꾼 박정희의 머릿속에는 최고 사무라이의 정신이 새겨졌다. 박정희는 ‘조센징 토벌’ 이야기만 나오면 벽력같이 고함을 칠 만큼 만주지역 토벌작전에 열심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광복과 함께 가짜 광복군으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한국에 들어온 박정희는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의 도움으로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생도로 입학한다. 여기에서 박정희는 3등으로 졸업하면서 가짜 광복군 군복을 벗어 던지고 남조선국방경비대 군복으로 갈아입는다. 당시 시대현실을 보자면 반공 군대 건설에만 관심을 가진 미군 군정청에서 만주군과 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뽑아서 간단한 영어교육 등만 시키고 곧바로 장교로 임명했기 때문에 남조선국방경비대는 옷만 바꿔 입은 일본 군대였다. 박정희의 초기 군대생활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군대 요직은 대부분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선배들이 차지했던 덕분이었다.
박정희의 일생 중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공산주의자로서의 변신이다. 박정희의 모든 행동은 어렸을 때부터 죽 이어져 오던 생존경쟁, 출세경쟁의 연장선상이었는데 당시 남조선노동당 간부자리는 출세에도 생존에도 도움 될 자리가 아니었다. 어쨌든 박정희는 여순반란 이후의 ‘빨갱이’ 숙청 과정에서 체포되었고 자술서에 남조선노동당 조직체계와 조직책 이름을 죽 써내려 가면서 처형을 모면한다. 박정희는 그냥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판결이 있은 불과 두 달 후, 육군본부 정보국의 민간인 상황실장이 되었고, 전쟁이 터지자 소령으로 복귀한다.
5 16 군사정변의 성공을 보면 한심한 ‘지도자’들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한강의 이변’ 이었다.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박정희의 반란군을 안내했고, 장면 총리는 도망쳤으며, 윤보선 대통령은 무엇 때문인지 대통령 권한행사를 거부했다. 미국은 처음에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진압하려고 하고, 박정희의 ‘빨갱이’ 전력을 문제 삼으며 정권을 승인해주려 하지 않았지만 박정희가 국시로 ‘반공’을 내걸자 케네디는 ‘정권 승인 확인서’에다 멋진 친필 사인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