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을 읽고 후타바테이 시메이 뜬구름 줄거리 뜬구름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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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뜬구름을 읽고
후타바테이 시메이 (二葉亭四迷)
이 작품은 1887년에 나온 작품으로 근대작품의 단골 메뉴인 “권선징악”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적인 모습을 그린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이다. 메이지시대를 배경으로 사랑과 인간의 갈등, 신구사상의 충돌, 나라가 페리제독에 의해 개방은 되었으나 아직도 개방되지 않은 일본인들의 의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근대소설은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지만 이 작품과 비교해 보면 당시의 우리의 문학수준이 일본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을 읽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갈등, 불안 등이 보이면서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분조’가 숙부 집에 얹혀살면서 숙모에게 당하는 설움과 눈칫밥, 여주인공이자 숙부의 딸 ‘오세이’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친구이자, ‘오세이’와 삼각관계에 얽히는 ‘노보루’와의 갈등이 잘 묘사되어 있는 소설이다. 숙모 집에 얹혀살면서도 취직과 함께 멀리계신 친어머니를 모실 수 있다는 기쁨에 잠겨있던 주인공이 면직이라는 큰 장애물을 만나면서 숙모의 눈치를 받게 되고 ‘오세이’와의 관계도 틀어져 버린다. 작품 곳곳에 나오는 분조의 심리상태를 보면 불안에 못 이겨 결국 남 탓을 하고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고 꼬아보는 것이 실로 놀랍다. 물론 숙모와 노보루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자격지심에 자신을 바로보지 못하고 남의 말을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메이지 20년대의 시대적 불안, 세대 간의 갈등, 이념간의 차이에서 오는 모순, 동요, 불안, 자기 상실 등이 여실이 드러난다. 읽어보면 비단 이 시대에 나타나는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은 늘 불안하고 복잡하여 앞으로 나아가려는 젊은 세대들에게 안정을 주지 못하고, 세대 간의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념차이로 점점 멀어져만 간다. 그것들은 곧 모두에게 갈등을 줘 양립할 수 없게 하는 것 같다. 현재 내 상태가 ‘분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너무 동감되어 슬프기도, 복잡하기도 망설여지기도 하면서 책을 읽었다. 곧 다가올 취업이라는 커다란 산이 나를 막아 캄캄하기만 하다. 옛말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세삼 절실해져 다시 다가온다. 6개월도 남지 않은 내 앞길이 상상되지 않는 것이다. 무어라도 작은 것 하나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마음이 편할까. 안다 해도 무서운 것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일이던가. 설레기보다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이럴 땐 엄마 치마 속으로 다시 들어가 울고 싶어진다. 이 소설은 언문일치라는 문체를 창시했다는 점과, 작자의 자의로 등장인물들을 선인으로 만들거나 악인으로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성을 관찰하여 묘사하는 리얼리즘을 창시했다는 점에서 일본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물론 결말을 매듭짓지 못하고 끝내버렸지만 말이다.
이 작품의 결말이 내 스트레스도 해결해줄 거란 터무니없는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을 냄으로써 시대의 방황을 더 절실히 느끼게 해준 것은 아닐까. 결국 답은 없다. 그것을 기대한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일지도 모른다. 정말 현실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분조’의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이 무리이겠다. 우리는 답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것이 세상사는 재미 아니겠냐고 선인들은 말했다. 그렇다. 다 안다면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많은 도전, 시험 등이 필요 없겠지. 하지만 아직 어린 우리들에겐 늘 힘든 과제인 것 같다. ‘분조’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 눈칫밥은 먹지 않았고, 마음을 내주지 않은, 사실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오세이’라는 여자와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은 것, 친구지만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은 믿음 안가는 친구 ‘노보루’라는 사람들과 같은 세대에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겠다. 차라리 내편이 낫다 라며 나를 위로해봤다.
우리세대는 부모님세대의 피나는 노력으로 비교적 문화와 경제적인 풍요의 혜택을 입으며 자라온 세대이다. 그러나 우리세대처럼 취업이 어려운 세대도 없을 것이다. 어학연수는 기본으로 다녀와야 하고 수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한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도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러니 “오포세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그 훌륭한 경제학자, 테크노 크랏, 대통령도 풀지 못하는 이 상황을 우리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하라는 현재의 모습은 암담하다 못해 자괴감마저 든다. 차라리 분조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이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그랬다. 물감을 아끼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앞으로 많은 물감이 필요할 것이다. 좋은 그림일지 형편없는 그림일지는 물감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나는 좋은 물감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후타바테이 시메이 (二葉亭四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