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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독서감상문
1928년 10월에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의 여자대학인 거턴과 뉴넘 학생들의 요청을 받고 두 차례에 걸쳐 강연을 했다. 여기서 울프는 ‘픽션’이라는 개념을 여성이 어떠한 존재인가, 여성이 쓴 픽션, 그리고 여성에 관해 쓰인 픽션으로 분류하고, 이후의 각 장에서 세 가지 개념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며 성과 글쓰기에 관한 사유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글의 초반부터 울프는 여성을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 즉 독자적인 수입과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 에세이는 그 결론에 이르게 된 사고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독자들이 상상의 경험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1장에서 화자가 옥스브리지의 잔디 밭에 내쫓기고 대학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화들은, 남자대학이 여성을 배제해 온 역사적 사실과 대학이 상징하는 특권에서 여성이 철저히 소외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그 유명한 옥스브리지의 오찬과 펀엄 대학의 저녁 식사에 대한 묘사는, 남자 대학의 풍요와 여자 대학의 빈곤을 대조하면서 양성에 있어서 물적 토대의 차이와 부의 불공평한 분배를 드러낸다. 2장과 3장에서 화자는 여성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2장에서 화자는 대영박물관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남성들이 여성에 관해 무수히 많은 책을 썼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여성의 열등성을 주장하는 이 저서들에 드러난 분노이다.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는 남성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서 화자는 여성의 열등성이,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남성의 우월성이, 남성에게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지대한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유추한다. 3장에서 화자는 여성이 처했던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보고자 역사를 참조한다. 화자가 알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여성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글 쓰는 법을 배웠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은 여자는 얼마나 되었는지, 간단히 말해 그들이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즉 1960년대 이후의 신사회사 연구 또는 1980년대 이후 신역사학파나 문화 연구의 주관심사가 되었던 평범한 개인의 일상에 대한 사항들이다. 하지만 왕의 행적이나 전쟁 등 남성 중심으로 기술된 기존의 역사서에서 여성에 관한 가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화자는 셰익스피어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누이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으로 구성한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교육을 받거나 돈을 벌 수 있는 권리 및 결혼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한 여성에게 재능을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으며, 더욱이 법과 관습으로 강화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불합리한 갈등을 겪으며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었음을 시사한다. 4장에서 화자는 여성이 쓴 픽션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16세기 귀족 계층의 여성이 비교적 여유로운 조건을 이용하여 글을 쓴다 하더라도, 여성의 본질적 의무는 남성에게 봉사하고 집안 살림에 전념하는 것이라는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고통을 받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분노하고 저항하며 두려움을 느끼면서 귀족 여성들은 내면의 상충하는 충동으로 비틀리고 재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울프는 18세기에 중산층 여성이 글을 씀으로써 돈을 벌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된 것이 십자군 전쟁이나 장미 전쟁 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경제적 자립은 마음의 자유, 즉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를 제외하면 19세기의 여성 작가들도 공동의 거실에서 제한된 경험과 인습적 통제로 고통을 받으며 분노와 경련으로 뒤틀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5장에서 울프는 당시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레즈비언 소설을 바탕으로, 메리 카미이클의 『생의 모험』이라는 소설을 상상으로 재구성하여 당대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논의한다. 이 소설이 문장과 플롯의 연속성을 깨뜨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혁신적인 것은 여성 간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런 점에서 울프는 희망을 발견한다. 몇 세기 동안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묘사되었던 여성이 이제 ‘클로이는 옥타비아를 좋아했다.’에서 표현되듯 여성 간의 관계를 통해 묘사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한 파격을 의미한다. 19세기의 위대한 여성 소설가들과 달리 현대의 여성 작가는 증오나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6장에서 화자는 남성으로서의 자의식과잉 상태인 현대 남성 작가의 작품을 살펴본 후, 두 남녀가 함께 택시를 타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두 성이 화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양성적 마음이란 남성성과 여성성이 융합된 통합적인 마음이며 온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조적인 마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고 주장한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치부하여 모든 특권을 조직적으로 박탈하고 기득권에서 배제하였으며 그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영속해왔음을 분석한다. 따라서 여성은 그 문명의 타고난 계승자가 아니라 그 반대로 문명의 변두리에 서 있는 이질적이고 비판적인 존재 즉 아웃사이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울프는 주류에서 배제된 여성에게만 관심을 국한하지 않고 시선을 확대하여 잠긴 문 안에 있는 것 즉 인사이더가 되는 것은 더욱 나쁠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가장들이 돈과 권력을 획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간을 찢어내고 허파를 잡아채려는 독수리와 매를 그들 가슴속에 담아두는 희생을 치르고서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울프는 가부장적 가치와 자본주의 및 파시즘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관련성에 귀중한 문명사적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에세이는 1928년 10월 2차례의 대학 강연에서 발표한 자료이다. 페미니스트 작가답게 버지니아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를 다르게 해석해 내고 있었다. 보통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같은 여성 입장에서도 약간은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자라면서 아직까지는 남녀차별에 대하여 크게 느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어떤 매체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을 극악스러운 여성들이 능력도 없으면서 괜히 설쳐서 암탉이 울어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만의 편견이었음을 그리고 버지니아 당시의 페미니즘 운동과 지금 현 시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전혀 같을 수 없다는 깨달음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20C 초기 이런 깨어있는 여성 명사가 있어 이러한 문제 제기 등을 통해 현재 우리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새삼 버지니아를 다시 보고 존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울프를 단지 초현실주의 작가, 의식의 흐름, 정신질환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우한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여성작가가 아닌 무엇보다 남성, 여성을 떠나 한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집중하고 인간으로서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 버지니아를 느낄 수 있어 감동이었고 내 생각의 지경을 넓혀진 버지니아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