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80억 공무원 을 읽고

 1  서평 180억 공무원 을 읽고-1
 2  서평 180억 공무원 을 읽고-2
 3  서평 180억 공무원 을 읽고-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평 180억 공무원 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80억 공무원 을 읽고
< 180억 공무원 줄거리 및 내용 >
이 책의 주인공은 공무원 김가성 씨다. 9급 출신으로 약 20년간 공직 생활을 한 평범한 공무원이다. 김가성 씨는 현재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고창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가성씨는 이미 지역축제의 명물로 자리 잡은 ‘고창 청보리밭 축제’로 대박을 냈다. 2004년에 착안해 3천만 원 예산으로 무려 180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창출했으며. 축제로 얻은 ‘청정 고창’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하면 총 수익을 가늠하기 힘들다. 위에서 시키면 하라는대로 해야되는 공무원 사회에서, 그것도 말단 공무원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인 걸까 . (쌤앤파커스. 2008) 부제목: 180억 신화 만든 말단 공무원 이야기 공무원이 결심하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에서 그 사연을 읽을 수 있었다.
1980년대 말 처음 공직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저자는 다른 공무원과 다를 바 없었다. 상명하복에 충실하고, 휴일에는 꼬박꼬박 쉬며 여가를 즐기곤 했다. 그러던 중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우직하게 농사만 짓던 한 농민이 농산물 가격 폭락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생각을 바꿧다. 그리고 그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식과도 같이 애지중지 키운 작물들을 판로가 없어서 헐값에 팔아야 하거나 자신의 손으로 지은 농사를 뒤엎어야 하는, 그리고 몰리고 몰려 스스로 세상을 포기하는, 그런 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이웃, 내가 모시는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리라 !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자 모든 것이 달리 보였다고 한다. 우선, 나를 찾아오는 민원인들의 얼굴에 그 농민의 얼굴이 겹쳐 보였고,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 같은 그 사람들의 말을 한마디도 흘려들을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어느새 20여년이 흘렀다. 김가성씨는 고창의 이노베이터 , 필드의 아이디어 뱅크 , 오지랖 넓은 김계장 , 사업 아이템을 창조해내는 공무원 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전문 대학에서 사무자동화를 공부했다. 남들처럼 화려한 스펙을 갖추지 못했지만 아이디어와 추진력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소 생뚱 맞지만, 이를 구체화시키고 실천하는 게 그의 장점이다. 올해로 6번째, 지역 축제의 대명사가 된 청보리밭 축제도 이런 기발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2002년 6월 월드컵 경기를 보던 그는 갑자기 어릴 적 보리밭 사잇길을 걷던 생각, 거기서 친구들과 뒹굴 던 생각이 났다.
그때 머리가 번쩍했다. "그래! 우리 고향 보리밭에서 축제를 벌이는 거야.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고창군 공음면 일대 보리밭은 개인 농장이다. 그는 청보리밭 축제 아이디어를 들고 농장 주인을 찾아갔다. 하지만 소박한 전원 생활을 꿈꾸던 농장 주인은 묵묵부답이었다.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군청 내부 결재가 문제였다. 다들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래도 기획안부터 빈틈없이 만들었다. 지구촌의 그린 투어리즘 과 팜 스테이 등 성공 사례와 다른 지역의 선례 자료를 수집했다. 휴일이면 자기 돈으로 전국의 크고 작은 축제를 답사해 성공담과 사례를 모았다. 그러기를 거의 1년, 마침내 군수의 결재 사인이 떨어지자 그는 보리밭 현장인 공음면사무소 발령 을 자원했다. 승진까지 포기한 채 면사무소로 갔지만 그를 반기는 이는 없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해 뙤약볕 아래 인부들과 현장 정리 작업을 했다.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들 들었고 아내마저 "축제를 한다고 해서 당신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라며 말렸다. 군청에서 나온 축제 예산은 고작 3000만원 , 홍보는 생각도 못할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는 축제 홍보를 위한 뇌물로 집에서 복분자주를 담갔다. 투박한 페트병에 담아 들고 여행 작가, 방송 작가, PD 등을 찾아가 부탁했다. 피땀 흘리며 홍보하고 노력한 끝에 "축제 첫날 학원농장 입구 도로에는 자동차가 수천 미터까지 줄을 지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교통은 마비 상태였다. 평소처럼 일을 하기 위해 밭으로 향하던 경운기가 한 시간이 되도록 제자리에서 꼼짝을 못하고 발이 묶인 탓에, 경운기 주인이 축제 운영본부 측에 항의를 하러 올정도였고, 첫날 준비한 보리밥 5000 그릇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그렇게 성황리에 성공적인 축제를 마쳤다"
그후 저자는 축제준비를 위해 홍보용 뇌물로 복분자주를 담그기 시작하면서, 고창 복분자의 대중화를 위해 할 일이 없을까 본격적으로 고심하기 시작하였고 고창군청 산업경제과에서 유통 업무를 담당하면서 복분자의 다양한 효용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복분자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는 복분자주의 특성을 설명한 전단지 1만2000부를 들고서, 서울에서 사업하는 친구에게 직원 세명만 붙여 달라고 해 넷이서 3000부씩 나눠 지하철에서 승객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서울에 뿌려진 전단이 무슨 큰 홍보역할을 했겠나 싶지만, 그래도 이 전단은 자기 열정의 표본이라 생각한다" 고 말한다.
청보리밭 축제를 성공시킨 이듬해인 2005년에 그는 복분자 란 명칭의 독점적 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한 상표등록을 특허청에 냈다. 산딸기나 뽕처럼 복분자도 영화 제목으로 가능 하다고 보고 그 사용권을 선점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거기다 지독한 복분자 사랑 은 복분자 노래 만들기로 까지 이어졌다. 거의 6개월 동안 매주 선운사에 가서 선운산 자연을 느끼며 노랫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노래의 탄생과 더불어 고창 복분자의 브랜드도 새롭게 선연 이라는 브랜드도 다시금 재탄생 되었다. 2006년에는 복분자 가루를 섞어 냉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까지 냈다.
이 책의 저자는 별난 공무원이다. 승진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원한다. 그래서 스스로 좌천 인사를 두 차례 자원했다. 첫 번째 좌천 인사는 2003년 7월 청보리밭 축제를 하기 위해 공음면사무소를 자원했을 때다. 이책의 저자는 사업 감각이 탁월하다. 청보리밭 축제를 성공시킨 저자는 2006년 초 선운산유스호스텔 소장으로 부임해 전년 대비 이용객이 48퍼센트나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잘나가던 그는 두 번째 좌천 인사를 자청했다. 50억 원짜리 국책사업 방장산 용추골종합개발사업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군청 문화관광과 소속 선운산유스호스텔 소장에서 다시 면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용추골 개발사업의 핵심인 전통예절학교는 저자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체험관광마을을 추진하면서 그는 이곳 가평마을을 박사마을 이라고 이름 붙였다. 근처 산봉우리 이름도 노적봉에서 문필봉으로 바꿧다. 브랜드 네이밍의 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