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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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읽고
황지우 시인이라 하면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신동엽 시인이라 하면 ‘껍데기는 가라’ 등 광복 후 현대 시인들의 알고 있는 시는 그것이 끝이었다. 각 시인들의 대표작이 이러했으니, 그 시인의 다른 작품들도 서정적인 색채를 지니겠거니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었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대표작의 특색을 지닌 시는 정말 일부였구나 하는 것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일반적으로 느껴왔던 익숙한 ‘시의 느낌’을 받았던 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정도였다. 유일하게 온전하게 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시이기도 했다. 그 외 다른 시들은 새로움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의혹을 향하여’, ‘徐伐 셔, 셔, 서울, SEOUL’처럼 괄호 속에 추가적인 말을 집어넣어 수필이나 소설 같은 느낌을 내기도 하고, ‘짜 자 잔 GAME OVER 한다면’, ‘日出이라는 한자를 찬, 찬, 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도둑은 대포로 쏘라’처럼 그림을 이용한 시도 있었고, ‘묵념, 5분 27초’나 ‘흔적 Ⅲ · 1980(5.18×5.27)처럼 숫자를 이용한 시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고은 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은 시인은 1970년대 손꼽히는 저항시인이었고 그에 해당하는 시로 ’화살‘ 정도가 있다는 것 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은 시인의 시에 대한 느낌은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강준만의 ’한국현대사 산책‘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4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고은의 시가 인용되었는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교과서 등 여러 책에서 여러 시들을 봐왔지만 이런 시들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50년대의 에서는 “영국배 타던 마도로스/영어가 능란했다/영어 능란한 사람이라/영어 능란한 대통령의 사랑을 받았다”와 같이 마치 인물 평전 같은 시들이 수두룩했다. 고등학교 교과서 어떤 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의 형식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 혹은 교과서에서 단정지어 놓은 시인의 특징이 모든 것이 아님을, 황지우 시집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황지우의 시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시는 ‘旅程’이었다. 다른 시들에 비해 (나의 관점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시였음도 작용했던 듯하다. 물론 산문시이기는 하지만 ‘徐伐 셔, 셔, 서울, SEOUL’과 같은 시 보다는 이해하기 쉬웠고 낯설게 하는 요소들이 적었다. 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시에 나타나는 상황이 일반적으로 내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던 상황과 달랐던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는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완도에 다녀오는, 그야말로 ‘여정’을 그린 시이다.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죽었다고 한다면 그 소식에 충격을 받고 흐느끼고 울고 곡(哭)을 하는 그런 장면들이 연상된다. 그런데 시에서 그런 장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라남도 완도군 부속 섬으로 나들이를 다녀온 듯했다. 완도에 처음 도착한 이후의 시 구절부터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喪家는 잔칫집이었다.’ 어떻게 상가가 잔칫집이 될 수 있나 의아했지만 상황은 그야말로 ‘잔칫집’ 그 자체였다. 아이들에게는 모처럼 집밖에 나와 마음껏 고기를 먹으며 뛰놀 수 있는 소풍날이며 큰어머니에게는 그동안의 서러움을 마음껏 토해내면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기쁜 날이기도 하다. 또한 이 날은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나누는 장이 아니라, 그 동안 자신들이 걸어온 삶의 비애를 털어놓는 장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할아버지의 상은 ‘죽은 자’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자’에 있는 것 같다. 하루 쯤 일상에서 벗어나 그 동안 못 보던 친척들과 모여 휴식을 가지는, 소소한 행사의 장인 것이다. 그런데 시인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비판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임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제목에서 보이듯 이 시는 서울에서 완도까지, 완도에서 서울까지 화자의 여정을 담아냈을 뿐, ‘할아버지의 상’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다. 애당초부터 상·장례 문화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임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 현대시론 과제는 황지우 시집 중에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시집을 읽고 재밌는 시, 감동적인 시 등 자신이 마음에 드는 시를 고르고, 그 시가 왜 좋은지, 다른 시들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말해오는 것이다.
황지우 시인은 우리가 만나 본 작품들의 작가이다. 「묵념 5분 27초」, 「아무도 미워하지않는 자의 죽음」등이 있다. 이 시들은 수업시간에도 우리 수업시간에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 시의 틀을 파괴한 시들이다. 그래서 시집을 읽기 전에 ‘이 시들 뿐만 아니라 또 파격적인 시가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시집을 읽었다.
이 시집을 읽고 든 생각은 시리즈물이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시가 하나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파리떼」는 형식은 시의 형식을 파괴했고, 시의 행 모습을 보면 약간 파리 같기도 하고 한 장을 넘겨보면 다시 줄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아리송한 시였다. 그리고 전반적인 내용은 일상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다른 신문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도 있고, 시 안에 ‘나’가 많이 등장함으로써 이 ‘나’가 황지우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시적화자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황지우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만큼 이 시집은 수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김형사에게」라는 시이다. (24p) 그 이유는 다른 시들은 내가 이해를 잘 못했고, 뭐랄까 어려운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 시는 읽는 그대로 이해가 돼서 쉽게 다가왔다. 그래서 시집 중에서 이 시를 고른 것이다. 사실 ‘시’라기 보다는 ‘일기’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시에서도 역시 ‘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나오는 ‘김형사’가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김형사’가 ‘나’의 집을 방문하였고, ‘나’가 ‘김형사’의 하는 모습(‘나’의 아이 장난감 사오는 것, 늙으신 어머님께 깍듯이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 사람 참 인간적이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중간에 ‘나’가 ‘김형사’가 인간적인 것 때문에 그런지 자신이 정치얘기는 안한다고 했다. 근데, ‘제1공화국’에서 ‘최불암씨 연기’가 좋았다고 말한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기? 우리도 연기하고 있는게 아닙니까, 김선생님?’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면 ‘나’가 ‘김형사’를 보내고 나서 ‘그가 간 뒤로 우리의 연기를 곰곰이 따져보는 버릇을 이제 나는 없앤다.’라고 한다. 아마도 이 시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전부 연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김형사’를 만나고 나서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그 버릇을 없애게 되는 것 같다. 이 시에서 황지우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형사’라는 직업이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이런 것이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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