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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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말; word, speech, language.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 곧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가리킨다. 사전적 정의다. 그 ‘말’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을 때 사용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도구이다. 인간관계 내에서 그 것은 수년간의 우정을 단 1초 만에 허물어 버릴 수 도 있고, 단 1초 만에 한번도 알고 지내지 못했던 사이를 수십년을 같이 지낼 친구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인생의 동반자로, 혹은 인생의 적대자로, 말은 그 관계 사이에서 늘 뜨겁게 반응하며 오고간다. 보도블록의 블록사이로 갈라진 틈을 밟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 다거나, 타인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굉장히 비위생적으로 생각하며, 평소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막 ‘말’을 일삼는 강박증 환자. 그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멜빈(Melvin Udall, 잭닉콜슨)이다. 멜빈은 사람들 사이의 ‘말’에 대해 아주 버릇없고, 냉혈하며, 고약한 성향을 지녔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그의 말솜씨(?) 때문에 주변엔 그와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앞서 말한 강박증도 그의 주변을 텅 비어있게 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의 이웃으로 게이이자 미술가인 프랭크(Frank Sachs, 그렉 키니어)는 멜빈의 냉소적인 태도에 매번 실망하고 의심하는 사람이다. 프랭크 그 자체는 멜빈에 대해서 크게 적대적이지는 않았으나, 멜빈이 자신의 강아지를 쓰레기 구멍에 넣은 뒤로 반감이 짙어져 그를 증오하게 된다. 한편 멜빈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식당에 가서 정해진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그 식당엔 멜빈에 대해 항상 자리를 치워주고 인내심있는 태도로 그의 신경질적이고 고약한 태도를 받아주는 웨이트레스, 캐롤(Carol Connelly, 헬런헌트)이 있다. 캐롤. 그녀가 이 영화의 공식적 주인공이지는 않지만, 그녀와 멜빈, 아니, 주인공 멜빈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해프닝과 사회부적응 강박증 환자 멜빈만큼이나 그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 영화 전체의 주제와도 맞물리는 인물간의 상호작용속의 톱니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메인 주인공이 아닌, 캐롤을 얘기 하고자 한다.
그녀는 멜빈의 하루에 있어서, 유일하게 그가 자발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대상이다. 물론 언제나처럼 멜빈은 캐롤에게 고약한 농담을 하거나 특정한 상황이나 느낀 점에 대해서 예의없는 비유를 해대며 대화를 시도한다. 캐롤은 그의 그런 버릇에 당황해 하고 못마땅해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욕을 하며 적대시 하지는 않는다. 캐롤은 천식을 앓고 있는 아들과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 때문에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녀의 그런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강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대해 무뎌지게 만들었다.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가 지키고 있는 가족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자기 자신이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지 않으면 금방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쉬움과 미안함이 그녀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어느새 캐롤은 그녀 자신, 오로지 그녀 자신과 타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주변과 타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를 맺어 버리는 종속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항상 자신의 상황과 가족을 그 타인 사이에 집어넣고 이해해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불안해하거나 회피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캐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느끼고 살아가는지 모르게 만든다. 아픈 아들 때문에 매순간 긴장의 나날을 보내는 캐롤은 멜빈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이들에게도 사회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정도만큼의 친절함을 베푼다. 요구되는 친절함 이상은 그녀 자신과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만든 특정한 경계를 침범하는 일이라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기 자신만의 느낌이나 감정을 통제하고, (심지어는 통제하고 있는지 조차모르고)모든일을 아픈 자식에게 쏟아 붓는 것이다. 하루는 아이를 돌보는 데 바빠 식당일에 나오지 않은 그녀를 보기 위해 멜빈이 그녀의 집을 예고없이 방문하는데, 그녀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의 방문을 거절한다. 아픈 아이 앞에서 고약한 멜빈을 받아줄 수 가 없는 것이다. 차갑게 멜빈을 내보내고서 캐롤은 아들을 어루만지며 자신을 달랜다. 여기서의 아들은 그녀의 외로움마저도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만의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또 그런 아들에게 의지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있어서 아들은 오로지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계속 달려야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 멜빈의 짧은 방문은 그 후로 그녀의 상황을 뒤바꾸어 놓았다. 멜빈은 그녀를 향한 자신의 특별한 감정이었는지, 자신에게 처음으로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었는지, 아이의 치료비를 전부 대겠다며 그녀에게 해방의 문을 열어준다. 캐롤은 그런 멜빈의 태도를 의아해하고 의심스러워 하지만, 맘 속 한편으로는 안정감과 기대감이 꿈틀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편지로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지만 멜빈은 그런 그녀의 편지를 받지 않는다. 특유의 고집이 고마움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캐롤은 멜빈에게 직접 읽어주기로 한다. 멜빈의 고집불통을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서랄까, 그녀는 그에게 ‘당신으로 인해 나의 삶이, 우리가정이 뒤바뀌었어요’라며 편지를 읽어준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짧은 순간이 었지만 멜빈의 마음의 문을 여는데 기여를 한다. 멜빈과 캐롤이 그 간의 짤막하고 깊이없던 대화에서 진심을 얘기하는 대화로 나아가게 되는 발로였다. 경계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 순간이다. 멜빈에게도, 캐롤에게도, 그 둘 사이 뿐만아니라, 그 둘 각자가 가진 벽에 금이가기 시작한 것이다.
멜빈, 캐롤, 프랭크는 프랭크의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우연히 여행을 가게 된다. 그 여행에서 멜빈은 캐롤을 향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쓰는 한편, 게이인 프랭크는 캐롤과 자신의 과거 얘기를 하며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선다. 프랭크는 도둑을 맞아 몸에 상처를 입고 재산을 탕진해서, 자살까지 결심하는 위태로운 감정상태에 있었는데, 우연히 캐롤이 샤워하기 위해 벗은 나체에서 영감을 얻고 미술구상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 일어서고자 결심하는 프랭크의 온기에 캐롤은 깊은 격려를 하며-그녀도 그럴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격려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캐롤 또한 처음으로 아이를 멀리 두고 떠나온 여행이었으며, 그것이 그녀에게는 그자체로 엄청난 사건이며, 자신의 삶에서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녀 자신만의, 그녀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전환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그녀 자신도 그녀에 대해 격려를 한다. 여행에서 멜빈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때문에 처음 좀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라고. 멜빈은 그의 냉혈안이며 고약한 성품을 그녀를 위해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캐롤은 그의 그런 말에 금이간 벽을 허물어 뜨리고 만다. 다 무너진 벽 사이로 그녀는 멜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멜빈 또한 그녀에게로 다가서며 서서히, 자연스럽게 그의 강박증에서 차츰 물러나오게 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캐롤에게는 인간관계 내부에서 문제점이라고 지적할 만한것이 없다고는 할 순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누군가의 개선안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비롯된 자기방어를 우연한 사건과 우연한 만남이 해결해 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매개체는 말. 대화. 언어만이 아니였다는 것. 그 것 자체가 개선안이고 해결책이 아니였을까. 특정의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진심보다는 말과 억양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며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을뿐더러, 그것은 서로를 인지할 수 있게 하는 보편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말. 언어. 그것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인간관계 상호작용은 때로는 우리에게 서로를 알게 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때도 있다. 캐롤이 멜빈과의 관계에서 그의 언어, 말에 대해서만 집중했다면, 그 둘 사이의 벽은 허물어 질 수 있었을까. 여행에서의 식사에서 멜빈이 말한 진실이, 그 둘 사이에 말만을 집중했더라면 그것이 진심으로 캐롤의 가슴에 전달 될 수 있었을까. 그 둘 사이의 진심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것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캐롤이 고쳐야 할 것이 지나친 자기방어라는 것과 멜빈이 고쳐야 될 것이 기분나쁜 언행이라는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캐롤은 타인을 대할때에 자기자신과 타인 그 두관계를 좀더 바라봐야 할 것이고, 멜빈은 누군가에게 말을 할때에는 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 좀더 이해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정도로 말할수 있다는 것 또한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 아니다. 그것은 둘 사이에 오고간 진심과 허물어진 벽에 대해서 다 설명할 수 없다. 그것 만큼은 확실하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멜빈이냐, 캐롤이냐 하면서 그들 주변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정리하고 문제점과 개선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영화를 다보고 DVD를 끄는 순간, 나의 개선안과 문제점지적은 ‘당신 감기에요’하는 수준이라는 걸 알았을 때, 이렇게 결론을 쓰게 되버린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의 진심과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에 대해 큰 감명을 받은 나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이다. 멜빈과 캐롤의 진심이 몇가지 언어와 몇가지 행동으로 이루어져 한가지의 세상을 형성했다면, 그들은 나의 개선안도 나의 지적도 필요가 없다. 그 둘 사이에 진실이 통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통했다는 것. 그 것 자체에 나는 그 어떠한 개선안도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