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녹색평론 희년과 민주주의의 회복, 왜 주빌리은행이 태어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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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녹색평론 희년과 민주주의의 회복, 왜 주빌리은행이 태어났는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책이름 :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주제 : 11. 효율, 평등, 생명의 경제학
글쓴이 : 손호현
(+ 수업내용, 읽기자료 “녹색평론”-희년과 민주주의의 회복, 왜 ‘주빌리은행’이 태어났는가‘)
사람은 죽으면 지옥 또는 천국에 간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천국에 가고 싶어 한다. 천국을 원하는 이유는 지금이 괴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도 비슷하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아서 종교를 원하는 것이고 만약 지금 행복하다면 모든 사람들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기독교는 현 세상을 행복하지 않은 세상으로 본다는 것을 수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이 세상을 고해 즉 고통의 바다라고 부른다. 우리가 대학을 가는 이유도 결론적으론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선택적인 노동을 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구원’이란 나쁜 것,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해왔는데 이러한 강제적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갖게 된 것이다. 이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신이였다. 즉 기독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예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관련해 효율, 평등, 생명의 경제학에 관한 기독교의 생각을 알아보려고 한다. 한 미래학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이익이 시간의 효율성과 관계가 더 깊어질 거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이제는 3차 혁명을 지나 4차 혁명인 “속도혁명”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이렇게 속도의 효율성이 뛰어나야만 미래가 생존한다는 단순하지만 절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효율성을 따지는 이유는 돈과 관련이 깊다. 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법은 항상 느리게 뒤에 쳐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경제와 윤리의 연관성은 어떨까? 사실 돈에는 윤리의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경제활동의 근본 문제들도 윤리적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효율성의 극대화로 인해 노동과정에서 비인간화를 가져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결국 돈에도 윤리의 얼굴이 그려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날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그 이유로 자유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의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자유주의는 시장방임주의를 기초로 한다. 하지만 세계가 대공황을 겪은 후, 수정자본주의가 시도되어졌다. 여러 국가들은 완전고용, 경제성장, 국민의 복지에 초점을 두었다. 목적달성을 위해 시장 과정에 정부가 개입되었고, 처음에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재정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비판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가급적 축소시키고 시장기능을 극대화해야함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개념을 보면 인간의 모든 활동영역을 시장경계 속으로 끌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돈에 의한 모든 가치의 정복과 평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재정의 재분배라는 네 가지 주요요소를 통해 발생한다. 첫 번째는 민영화, 법인화, 상품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징후 중 하나이다. 두 번째는 국제무역과 생산적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금융 부문에서 돈을 통해 버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의 금융화를 통한 투기적이고 약탈적인 부의 집중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채의 덫이라는 금융위기의 조작과 관리를 통해 부가 빈국에서 부국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섬세한 기술을 발전시켰다. 네 번째는 국가재정의 재분배는 민영화의 전략을 통해 이루어진다. 민영화는 사회적 임금지원을 통해 지출을 줄여주고 하위 계급에게 처음엔 이롭게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결론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의 사적 상품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인간과 자연 모두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으로 고려되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존해야하며, 민주적 과정을 통해 해결해야하고 재정적 경제적 성장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고려한 개발 모델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효율성의 추구가 절대적 가치로 군림하는 데에는 신주유주의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문화적 문법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대중적 규칙을 가리킨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는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가 있다. 이 모든 문법은 한국인의 이기주의를 뚜렷이 보여준다. 한국 기독교의 문화적 문법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 구성된 교회를 가리킨다. 최근의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효율성 숭배와 한국인의 가족주의라는 문화적 문법의 결합이 가져온 물질적 경제지상주의에 의해 식민지화 되어 종교적 초월성에 기초한 비판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이러한 문제를 통해 우리의 문화적 가치와 윤리적 판단은 경제 성장 정책에 부수적인 것이고 이에 봉사해야 한다는 전제가 드러나야 한다. 시선을 효율에서 평등의 이야기로 바꿔보려 한다. 기독교는 청지기 사상을 통해 단지 경제적 효율성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지 않으며 물질이 얼마나 인간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의 인간화를 위해 사용되는가에 보다 관심을 갖는다. 두 개의 가치로 대변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평등성에 대한 옹호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기독교가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비판세력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는 소유권보다 생존권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경호는 몇 가지의 법으로 분석을 했는데 그 첫 번째로 추수법이 있다. 추수법은 땅의 소유는 오직 신에게 있을 뿐 결코 땅은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또한 재배한 곡물은 약자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조금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보았다. 두 번째로 십일조법이 있는데 자신의 소득의 십 분의 일을 교회에 내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십일조법에 대해 교회가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십일조법은 원래 정신을 회복하여 사회선교를 위해 교회 예산의 일정부분을 사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로 임금 지불법이다. 이 법은 땅을 빼앗겨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바로잡아 품삯을 주는 방법을 알려준다. 네 번째로 이자 금지법이다. 보통은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와 같은 약자들은 돈을 값기 위해 열심히 일해도 이자를 내야하기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혹독한 이자는 종종 인간의 노예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자를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국민을 지킬 의무는 가지고 있으나 정작 실행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주빌리은행이 빚진 사람을 도와주고 있다. 주빌리은행의 탄생과정을 알아보면 어느 프로그램이 저소득층의 문제를 함께 분석하며 해결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한 남자를 촬영했는데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 사업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다정하고 밝은 분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의 파산으로 채무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 남자는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아이들의 미래보다 당장의 빚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 이유로 주소도 소득도 숨긴 채 살아가야만 했다.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사회는 그 모든 불행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간주하지 않았으나 2008년 이후 책임에 관한 사회의식이 변화하기 시작해 파산의 문턱이 높아졌고 채권자와의 협상에서도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채권자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든 채권자들은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채권자를 빚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금융 용어들로 포장되어 은폐되고 있는 금융시장의 폭력성, 엽기적 행태를 고발하는 캠페인이 바로 ‘주빌리은행’이 하는 일이다. 다섯 번째는 담보제한법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사람을 돈을 빌려주는 담보라며 인간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목숨을 위험할 만한 것을 내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이에 대해 비난하며 담보규정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약자 보호법이다. 여섯 번째로 안식일법, 안식년법, 희년법이다. 안식의 법은 7일의 6일은 일을 하고 하루는 쉬어야 한다는 법이다. 안식의 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야하며, 가축과 땅도 쉬게 해야 한다고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강제노동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쉬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안식년도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7년 중에 1년을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년법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봄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돈을 우선적으로 하는 약자에게 고통스러운 사회이다. 국가는 이를 돌봐야 하지만 서비스를 하지 못한 채 약자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일부가 50년마다 채무자들 즉 약자의 빚을 탕감해주고, 잃었던 토지를 다시 되찾아주는 구약성경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희년’이다. 희년의 목표는 어떤 이유로든 약자들을 하나님나라의 보편복지 수혜자로 재활, 복구시키는 것이다. 이는 자발적인 평등주의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여섯 개의 법은 약자를 보호하고 구제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