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외교정책에 있어 WTO와 코메콘의 의의와 블록화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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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소련 외교정책에 있어 WTO와 코메콘의 의의와 블록화에 끼친 영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I. 서 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간의 정치외교이념군사상의 대립을 하는 냉전시대가 도래하였다. 2차 대전의 승전국이 소련은 유럽과 아시아에 영토를 확장하고, 동유럽에 위성국가를 수립하였다. 미국은 이러한 소련의 확산정책에 대하여, 마셜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서유럽의 경제부흥을 목적으로 경제적 원조를 하였고, 소련은 이에 대항하여 코메콘을 만들고 베를린을 봉쇄하여 철의 장막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력이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결성하여 소련의 침공에 대비하자,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WTO)를 만들어 대항하였다.
먼저 자유주의 진영의 상황을 살펴보면 1947년 3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에서 미국이 공산 세력 저지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트루먼 선언(Truman Doctrine)을 발표했다.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에 대항하기 위하여 우방 여러 나라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원조를 한다는 선언이다. 후에 마셜플랜, 북대서양 조약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그 후 1948년 마셜플랜으로 인해 미국은 유럽의 경제 부흥을 목적으로 경제적 파국에 허덕이던 유럽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1949년에 미국을 중심으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가 결성되었다. 이는 서유럽 여러 나라의 소련에 대한 군사 동맹으로서 발족한 것이다.
다음으로 공산주의 진영을 살펴보면 1947년 몰로토프 계획(Molotov Plan)이 선언되어 마셜계획에 대한 대항 조치로서 동유럽 여러 국가들과 상호 원조 체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 계획은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의 경제 부흥과 공동 방위력을 결속시키려는 것이었다. 몰로토프 계획의 일환으로 1947년 코민포름(Cominform = Communist Information Bureau : 공산당 정보기구)이 결성되었다. 소련, 동유럽 여러 나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9개국의 공산당이 정보 교환 또는 활동 조사 등을 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국제적인 지도 기관이다. 또한 1949년 1월에 코메콘(COMECON = Communist Economic Conference)이 발족해 사회주의 여러 나라의 경제협력 기구로 특히 1955년부터는 국가간의 분업 조정에 역점을 두었다. 마지막으로 1955년 5월 바르샤바 조약기구(WTO)가 결성되었고 이는 소련, 알바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동독,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 8개국이 바르샤바에서 맺은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으로서 이 조약은 서구 진영의 공동 방위 체제인 NATO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동구의 지역 안보를 담당하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은 대립구도 하에서 우리가 조사하고자 하는 것은 구소련 외교정책에 있어 WTO와 코메콘의 의의와 블록화에 끼친 영향이다. 기존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WTO나 코메콘은 대서방 안보 벨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초점을 두고 살펴볼 부분은 양 기구가 과연 미소간 체제대결의 첨병이자 핵심역할이라는 대외적인 측면에서만 기능했는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면도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즉 기존의 냉전적 사고에 기반한 시각을 벗어나 양 기구가 가진 의의를 새로운 측면에서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코메콘과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공산주의 진영의 블록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관해 앞으로 심도 있게 다루겠다.
II. 본 론
1.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바르샤바 조약기구(Warsaw Treaty Organization)는 소련을 위시하는 동유럽 8개국 즉, 동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가 1955년 5월 바르샤바에서 결성한 집단안보체제이다. 이는 소련군을 중심으로 480 여 만 명의 대군으로 구성되었다. 바르샤바 조약에 의해 동유럽 국가들은 강력한 소련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안보를 보장받았으나, 실질적으로는 베를린 봉쇄를 계기로 고조된 동서냉전 기간에 소련은 동유럽 위성국들을 조정통제하는데 이 기구를 이용하였다.
1) 기원
1940년대 크레믈린은 모든 동구 국가들에 사회주의 괴뢰정권을 조직하였고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의 7개국과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이라는 쌍무조약을 체결하여 영향력을 강화시켰다. 쌍무조약이 체결된 일시를 보면, 체코는 1943년에, 유고와 폴란드는 1945년, 루마니아와 헝가리는 1948년, 불가리아는 1948년, 그리고 동독이 1964년에 체결했다. 그러나 소련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55년 동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바르샤바 조약이라는 집단 동맹적 성격의 다자간 조약을 체결하도록 하였다.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이라는 쌍무조약이 있음에도 다자간 동맹체제인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소련은 1945년에 미국을 주도로 하는 서구 국가들이 파리협정을 체결하고 추진하여 서구동맹(Western European Union)을 탄생시킨 사실을 중시하였다. 파리협정에서는 또한 서독의 재무장을 허락하였으며, 더 나아가 NATO의 가입도 승인하였다. 파리협정의 체결, 비준, 서구동맹의 탄생, NATO의 창설, 서독의 재무장과 NATO에의 가입 등 서방세력에 의한 일련의 사태 진전은 소련으로 하여금 당연히 군사적 압박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이런 인식 하에 소련은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고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서방의 NATO에 대응할 동맹기구의 탄생이 불가피하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