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 R Tolkien과 C S Lewis의 예기치 못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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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J R R Tolkien과 C S Lewis의 예기치 못한 우정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J.R.R.Tolkien과 C.S.Lewis의 예기치 못한 우정
나는 오늘 톨킨과 루이스의 인생에 있어서 서로에게 미쳤던 영향력들을 살펴보려 한다. 톨킨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 순간 루이스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루이스는 누구이며, 톨킨과의 영혼을 나눈 우정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물론 영혼을 나눈 우정이라는 말만으로도 서로의 애정을 엿 볼 수 있지만 이들의 우정이 그들의 작품에 미쳤던 영향들, 그리고 그 깊이를 찾고 싶었다.
우선 톨킨은 나에게 있어서 판타지와 기독교적 관점의 연결고리를 보여주고, 판타지란 장르의 문학의 위대함을 절실히, 그리고 투명하게 보여줬던 작가이다. 이전에 무지했던 나에게 있어서 판타지란 소위 말하는 이상한 아이들이나 보던 문학 장르였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이 이상한 아이들은 나보다 더 성숙하고 그만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중학교 때부터 꼭 한반에 한명씩 이런 애가 있었다. 선생님들조차 무언의 눈빛으로 감당 할 수 없음을 표현할 정도로 특이하고, 보통 우리들이 모르는 무언가에 열중하며 빠져들었던 아이들 말이다.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던 그 아이들의 손에는 항상 판타지 책이 들려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당시에는 그저 보통사람들과는 달라보였던 그 아이들이 즐겨 읽었던 책이 판타지였기 때문에 판타지란 이상한애들이 읽는 책이라고 나도 모르게 각인 되어있었던 것 같다.
또한 누군가 그랬다. 판타지는 하나님의 존재를 넘어서 인간의 욕망일 뿐이라고 말이다. 즉 판타지 작가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넘어선 자신의 욕구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사실 난 판타지 자체를 읽지 않았다. 그리고 기독교 신자인 나에게 이런 말은 판타지 문학 장르에 반발심을 갖게 하기엔 당연했다. 또 위에서 말한 이상한애들 때문인지 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 사람에게 반지의 제왕을 읽어보라고 건네주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 보기도 전에 그 일에 있어 왈가왈부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도 지레 겁부터 먹어 버렸던 것 같다.
어쨌든 변명 따위는 여기서 그만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톨킨이라 하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신론자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할 만큼의 자신만의 확고한 신앙심이다. 아마도 같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그의 그런 신념이 가장 마음에 든다. 톨킨의 작품 『반지의 제왕』을 공부하면서 내가 느꼈던 점을 루이스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그리스도를 인용하는 문장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수 있다”라는 이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문구를 잊을 수 없는 게 바로 나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하나하나가 그랬다. 내가 발표했던 톨킨의 작품에 나타나는 기독교 관점은 성경의 그대로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반지원정대의 후반부에서 사우론이 오크에게 오크가 존재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어떻게 오크가 됐는지 아는가? 그들도 한때는 엘프였지. 그러나 어둠의 힘에 붙들려 고문당하고 찢겨졌지. 그래서 끔찍하고 타락한 생명체가 된 거야." 이 부분의 영상을 보면서 순간 내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이 있다. 바로 사단이다. 사단도 원래 천사였지만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갖기 위한 어둠의 힘에 사로잡혀 타락한 생명체, 즉 죄와 악으로 이끄는 사단이 된 성경의 말씀 말이다. 이렇듯 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존재성과 유일성을 주제로 완벽하게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창조해낸 데 반해 C.S.루이스는 그리스-로마 신화, 북구 신화, 기독교 등 이미 존재하는 모티프들로 『나니아 연대기』를 축조했다. 이 『나니아 연대기』는 통상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20세기 판타지물의 고전으로 일컬어진다. 그럼 여기서 옥스퍼드에서 톨킨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던 루이스의 작품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적 관점과, 톨킨이 미쳤던 그의 인생과 신념을 알아보기로 하자.
무신론을 주장했던 그의 유년 시절
그의 자서전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절실함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어 13살 때 신앙을 버리게 된 것을 재앙으로 표현했던 루이스는 그의 인생을 무신론자라는 사상아래 살았던 그가 하나님이란 존재의 위대성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그가 톨킨을 만나기 전, 신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신념을 오랫동안 섬겨왔던 그를 톨킨은 단숨에 기독교로 회귀하는데 절대적 공헌을 한다. 그런 그가 그의 책에서 무신론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사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에 대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무신론에 접어들게 된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 속에 무언가-이를테면 신비학에 대한 열정처럼 초자연적인 것을 갈망하는 마음-가 생겨나, 때때로 나를 상당히 괴롭히게 되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그는 자기 스스로 영에 대한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 그가 정한 규칙이란 이른바 깨달음, 즉 생생한 상상과 감동이 없이는 단 한구절도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난생처음으로 우리 주변에 실제로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으며, 눈에 보이는 세계란 나의 단순한 신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영역을 가리는 장막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와이번에 거주하게 된 후 13살 때부터 이런 사색에 접어들곤 했다. 깨달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스스로 발버둥친 그의 어린 시절을 보고 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신앙생활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주일이 되면 항상 나와함께 3형제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셨다. 그땐 이유를 몰랐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교회를 꼭 가야 하는 이유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도 싫었고, 당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라도-아버지는 무교시다-까지 나가야 할 이유를 말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공과 시간엔 지루한 성경얘기가 듣기 싫어 나의 의사 표현을 하고자 억지로 자는 척 하며 하나님에게 순종보다 반발심이 더 많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까지 보내고 고등학교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과 압박으로 답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절실하게 믿게 되었고 눈을 뜨던 아침부터 다시 눈을 감기까지 하루 종일 하나님의 성령 속에서 살게 되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말이 나에게 딱 들어맞은 셈이다. 난 절실한 기독교 신자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종종 시험이 찾아온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인생 만사가 다 순조로운 것이 아니다. 조그마한 문제가 터져도 아니, 하나님이 있다는데, 내가 하나님을 내 주로 모시고 있는 동안은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라고 그 동안 내가 믿고 깨달았던 하나님의 존재와 지금까지 내게 주신 응답은 그 작은 문제 하나로 원망과 의심으로 인해 증발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무조건 이론적으로 설명하려 들었다. 성경은 불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말 천지다. 하나님을 내 온 마음으로 믿었을 때 내게 성경이란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을 보여주며 내가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유일성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사소한 시험에 부딪힐 때면 성경을 이론적으로 파헤치려 들었고, 말도 안 되는 이 성경을 보면서 왜 이런 힘을 가진 하나님이 나의 이런 작은 문제 하나를 해결해주지 못하는지 반발심이 커져 갔을 때가 있었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나의 무지함을 회개하게 되지만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주저리 늘어놓은 것은 루이스의 무신론이라는 신념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을 가졌던 그에게서 과거의 덜 성숙했던 나의 영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신의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만들었다면, 이처럼 약하고 흠투성이 일리가 없다"라는 Lucretius의 논증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며, 나 또한 이 구절을 읽고 한때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나의 과거를 성찰케 하는 시간이 되었다. 루이스는 이처럼 즉시 얻는 깨달음이라는 기도에 잘못된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뒤집어쓰게 된 우스꽝스러운 멍에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서 몸을 빼고 싶다는 소망을 무의식적으로 품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던 두 번째 이유로는 어린 시절 고전을 읽을 때 선생님들이나 책 편집자들은 처음부터 이러한 종교적 개념들은 순전한 환상일 뿐이라는 전제를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환경에서부터 양육된 신념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의문을 가졌던 어린 그에게는 이런 교육이 그의 의문에 명확히 답을 제시해준 셈이다.
마지막으로 루이스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염세주의"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부유한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죽어라고 노력해 봤자 구빈원행을 면하는 것이 고작인 부단한 투쟁의 연속"이라는 아버지의 푸념을 듣고 자란 탓 때문이다. 이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루이스는 자신이 자라온 배경에 대해 설명할 때 이런 아버지의 얘기를 많이 이용한다. 이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계속되었던 아버지의 신세한탄이 어린 그에게 부질없는 인생이라는 염세주의를 깊게 받아들이도록 작용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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