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현대 사회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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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과학 현대 사회와 인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현대 사회와 인권
- 목 차 -
1. 개 념
2. 배경 및 원인
-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한국인에 대한분노
3. 사례 및 국가의 결정
- 위원회의 판단
- 결론
4. 외국인 노동자의 파업
6. 다른 나라의 외국인 노동자제도
- 독일
- 대만
5. 다른 계층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
- 기업의 측면
6. 문제해결방법
7. 부 록
8. 참고자료
1. 개 념
차 별 -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형태.
국가인권위원회법안 제30조 2항에 의거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병력을 이유로 한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다른 법률에서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 대한 우대를 차별행위의 범위에서 제외한 경우 그 우대는 차별행위로 보지 아니한다.
2. 배경 및 원인
외국인노동자의 유입
1987년은 한국의 민주화의 역사뿐 아니라 이주노동의 역사에서도 전환점이었다. 그 무렵 해외로 일하러 떠나는 한국인은 거의 사라졌고, 대신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오기 시작하였다. 서울 아시안게임이 끝난 이듬해인 1987년 봄 ≪동아일보≫에는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이 서울 강남에서 일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의 탄생을 알리는 첫 신호였다. 그 후 국내 외국인노동자의 수는 급증하였고, 출신국도 다양해졌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하며 중국과 교류의 물꼬를 텄고, 그 과정에서 재중동포의 고국 방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다. 그러면서 ‘중국 국적을 가진 한민족’, 즉 중국에서 조선족(朝鮮族)이라 불리는 우리 동포들이 대거 한국에 몰려 왔다. 재외동포든 이민족이든,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들은 형식적으로는 관광객이나 친지방문자였지만,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노동자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한국은 ‘노동력 유입국’의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온 것은 한국정부가 1960년대부터 추진한 공업화 정책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지만, 1980년대 중엽에는 이웃 나라 사람들이 일하러 올 정도로 발전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에 일하러 오는 현상은 세계 각국의 발전격차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에서 한 달 일해 번 돈이 자국에서는 몇 달 치 혹은 몇 년 치 소득에 준한다는 ‘환율의 마술’이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노동자를 끌어들인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국내 노동시장에는 부분적인 노동력 부족현상이 발생하였다. 경제적 궁핍에서 막 벗어난 한국인들은 더 이상 ‘어렵고 지저분하며 위험한 직종’에 종사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에, 중소제조업체와 건설현장 등에서는 구인난(求人難)이 만성화되어 있었다. 더욱이 그 당시 한국정부는 한국인의 해외여행 규제를 풂과 동시에 외국인의 한국 입국을 매우 용이하게 하였다. 결국, 외국인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입국하기 쉽고 일자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기회의 나라’였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의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노동자로 정착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생산기능직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증(visa)을 전혀 발급하지 않았다. 1987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 정부는 외국인노동자 유입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에 온 외국인노동자는 전원이 출입국관리법에서 정한 적절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미등록노동자(undocumented workers)였다. 정부는 1992년 6월 10일부터 7월 31일까지 사상 처음으로 미등록노동자의 수와 취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받았다. 이 기간 중 자진 신고한 미등록노동자는 61,126명이었고, 사용자는 10,796명이었다. 정부는 미등록노동자를 합법체류자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세워,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그것이 바로 ‘외국인 산업연수제’다.
한국의 생산기능직 외국인력 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산업연수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상의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2003년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노동자 중 산업연수생은 5% 내외에 불과하고, 80%는 미등록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미등록노동자들은 한국의 인력난을 해결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어 일하는 탓에 임금체불산업재해직업병부당해고 등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국인력제도는 공식적으로는 산업연수제도연수취업제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등록노동자를 활용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편법이다. 정부는 외국인노동자의 저항에 부딪칠 때마다 외국인력제도를 수정하였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수십 차례 원칙 없이 뜯어고친 누더기 꼴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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