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회사] 외세의 침략과 병인박해 -외세와 프랑스 신부 및 천주교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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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외세의 침략과 병인박해
-외세와 프랑스 신부 및 천주교 신자-
제 1장 들어가며
병오박해 이후, 20여 년이 흘러 1866년 또 다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전의 박해와 달리 병인박해는 6년이나 지속되었다. 병인박해의 기간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본 발제에서는 1866년 1월의 병인박해 발발부터 신미양요가 발생한 1871년까지의 6년을 병인박해의 기간으로 한다.
박해 기간의 장기화와 외세문제는 병인박해의 특성일 것이다. 황사영 백서 사건에서 조선 정부의 우려와 분노의 대상이 된 대박청원 문제는 병오박해에 이르러 외세 침략의 실현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즉, 조선정부의 입장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의 대박청원의 바램’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실 함대의 내항을 전후하여 발생하는 지속적인 이양선 출몰 영국과 프랑스의 함선인 이양선은 헌종 대와 철종 대에 걸쳐 자주 조선 해역에 출몰하였다. 빈번한 이양선의 출몰과 그들의 인명 살상 및 식량 약탈 등으로 지방 관료들은 괴로움을 겪어야 했으며, 중앙정계에서는 국가적 위기의식이 날로 높아지게 되었다. 헌종 재위 14년에 7회, 철종 재위 14년간에도 7회의 이양선이 조선 해역에 출몰한 기록이 보이고 있다; 이원순, “병인박해, 병인양요, 그리고 외규장각 도서,” 『병인양요의 역사적 재조명』, (성남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1), 11~12(헌종, 철종실록에서 조사).
은 외세에 대한 경계를 하게 했고, 쇄국양이 정책을 강화시켰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선박이 출몰하여 통상을 요구하거나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하여 야기된 외세와 조선군 사이의 전쟁은 병인박해를 장기화시켰다.
본 발제는 병인박해의 초기 발발 상황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박해가 가열화 및 장기화 되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외세의 무력적 개항요청을 살펴보고, 그 침략이 박해에 미친 영향과 박해 당시 ‘외세와 함께했던‘ 프랑스 신부들과 천주교 신자들의 역할과 입장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 2장 병인양요 - 프랑스
이원순은 1866년 1월에 시작된 병인년의 박해는 4월에 접어들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유는 그 당시 고종이 민비를 맞아들이는 국혼(國婚)이 거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인년 1월부터 시작된 박해는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와 20 여년이나 활동해 오던 부교구장 다블뤼 주교와 그 밖의 7명의 프랑스 성직자를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이로써 조선교회와 사목조직을 와해시켰고, 남종삼, 홍봉주 등과 같이 교회의 중직을 맡았던 교인들 및 지방의 지도급 교인들까지 처형함으로써 교회의 조직까지 괴멸시킬 수 있었다. 이원순, “병인박해, 병인양요, 그리고 외규장각 도서,” 25~26.
리델, 페롱, 칼래 등의 신부는 중국으로 피신하여, 교회 조직에는 상당한 타격이 가해진 상태였다. 이러한 대원군의 천주교에 대한 확실한 박해는 대원군의 정치 노선을 명확하게 했고, 정치적 반대파를 잠잠하게 했으며, 자신의 기반을 다져 정권을 더욱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할 때, 박해는 어느 정도 누그러질 수 있는 정황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때, 제너럴 셔먼호의 등장(1866년 8월)으로 박해는 다시 가열되었다. (제너럴 셔먼호의 등장에 관해서는 미국의 통상 요청과 관련하여 후술할 것이며, 본 장에서는 프랑스의 무력적 침략으로 인한 병인양요의 발발과 박해에의 영향을 볼 것이다.)
제 1절 한불전쟁 - 병인양요
병인양요는 1866년 9월 20일부터 11월 18일까지 약 2개월간에 걸쳐 조선에 내습한 프랑스군과 조선왕국과의 전쟁이다. 이원순, “병인박해, 병인양요, 그리고 외규장각 도서,” 28.
교인들의 도움으로 체포를 면한 리델신부는 6월 말에 배를 타고 중국으로 탈출하여 조선에서의 박해상황을 다시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P. G. Roze)에게 알렸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의 역사Ⅰ』, (서울: 기독교문사, 1989),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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