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비즈니스의 이해 - 유러피언드림 -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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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비즈니스의 이해 - 유러피언드림 -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유러피언드림
나는 유러피언드림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내가 생각하며 아직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등장의 유러피언드림 , 내가 생각해 왔던 사실과 너무나도 많이 변화해버린 세계를 보며 세계화의 변화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자신을 비판하게 되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변화에 발 맞추어야 겠다는 생각 역시 가지게 되었다. 내가 몰랐던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드림을 느낄 수 있었던 이글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미국인은 일하기 위해 살고 유럽인은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통해서 이러한 미국인과 유럽인 사이의 관점 차이를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안 드림의 근본적 시각 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많이 일하고, 많은 돈을 벌지만 그만큼 많은 부분을 포기한 삶을 선택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적게 일하고, 더 높은 경제 성장률을 이룩해 내며, 더 많은 여가시간을 즐긴다. 적게 일하고, 효율성이 높고, 더 많은 여가시간까지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있을까하는 물음이 생긴다. 저자는 현재 유럽의 이러한 현상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개인주의의 발달은 막연하게 르네상스에서 그 기원을 찾았고, 사유 재산제가 확립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원이 중세 말기,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의 변화에 따라 유럽인들의 일상과 생활에 심오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에 따라 종교적인 색채가 적어진 반면 과학적인 세계관을 가진 새로운 유럽인들이 등장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합리적인 급진적 신개념이 철학, 과학, 경제, 정치 분야에서 일어난 변화에 발맞추어 수백년에 걸쳐 서서히 형성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계몽주의가 출현하고 이들은 제어하고, 이용하고, 재산으로 만들 수 있는 대상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을 중시했다. 계몽주의에서는 자연이 사납고 위험하고 원시적이며 사악한 힘으로 간주되고, 다스려지고 길들여지고, 생산적이 되어 인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태동은 유럽대륙이었으나 그것이 더욱 절실하게 이어진 곳은 아메리칸 대륙이었다. 유럽에서는 개인주의가 나타나고 그에 따른 사유 재산제가 등장해 사회가 혼란을 겪을 때에도 한 노선보다는 공동체와의 조화를 함께 도모하려고 했던 거 같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계몽주의, 개인주의, 사유재산제가 거의 그대로 정착해서 지금까지 아메리카 드림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자연에서 ‘인간’을 떼어내는 것을 그토록 강조 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비슷한 시기 동양에서는 자연은 인간과 동일한 존재로 인식 되어왔다. 유럽 대륙에서 시작된 이러한 계몽주의는 세계대전과 식민지 개척을 거치면서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로 전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오염이라는 과제를 안겨 주었다. 계몽주의가 미국에서 더 잘 뿌리 내렸다는 것은 지금 미국의 현실을 봐도 명백하다. 미국은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 당하고 싶어하지 않는 국가로 손에 꼽힌다. 여기서 문제 삼을 만한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 당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이익은 공공연 하게 침해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개인주의와 사유재산제 등이 미국에 순수하게 자리잡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분명 그것은 지금 세계화라는 추세에는 맞지 않는 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세계화라는 추세에 맞지 않는 다는 점만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만행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EU와 미국의 차이점이라고 생각된다. EU는 책 전반적인 내용에서 다루듯이 계속해서 거론되는 주요 단어중의 하나가 “지속가능한 개발” 이라는 것이다. 이 단어 속에는 지금까지의 유럽 그 자신에 대한 반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다음에서는 혁명적인 신기술에 따른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중세 말 시장 자본주의가 봉건 경제를 몰아내고 도시국가에서 근대 민족국가로 통치 모델의 변화를 이끌었던 것과 마찬가지 현상으로, 기술 발달에 따라, 국가 내부에 국한되어 왔던 시장 경제가 세계적인 네트워크 경제의 도전을 받고 있고, 민족 국가 체제가 유럽 연합과 같은 지역정치 공간에 의해 부분적으로 잠식되어 가고 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범위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교류 속도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그에 따라 사이버 공간을 통해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정보가 광속으로 교환되는 세계에서는 물질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귀한 자산이다. 따라서 이전의 수직적인 구조로는 현재 추세에 따라가기가 힘들다. 책에 설명된 바와 같이 수직적 구조는 의견의 반영이 제한되고, 환경을 빠르게 반영할 수 없으며, 의견이 신속히 전달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는 10년 단위로, 혹은 년 단위로 환경이 변화했다면 지금은 그 단위가 달, 시간 등으로 단축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나타난 것이 네트워크 조직이다. 네트워크 조직은 이전의 제로섬 조직과는 달리 윈-윈 을 추구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네트워크의 장점을 여러 가지 나열하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타기업 혹은 타국과의 협조를 통해서 서로의 장점을 이용하여 상생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대한 부정적 견해는 너무 적게 다루고 있다. 기업의 경우 네트워크 조직을 형성하게 되면 상대 기업의 특화부분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것이 노출됨에 따라 독자성이 떨어진다는 단점과 함께 네트워크 조직은 기간에 있어 긴 기간보다는 필요에 의해 형성되었다가 금방 해체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그런게 저자는 이런 부분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 국가간의 네트워크 조직은 기업과는 다르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장점만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네트워크 조직이 정보화, 세계화 추세에 있어 적합한 조직구조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그것의 부정적 측면도 파악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유럽은 이렇게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이념을 제시하는 듯 하지만 이민에 있어서는 미국과 상대적으로 더욱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 저자는 유럽의 이민 배타성에 대해 지적하고,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대안으로서 이민을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이민은 받아들이는 국가에 범죄, 종교등과 관련된 사회혼란을 일으킬 가망성이 크다. 그렇다고 이민에 어느정도 제약조건을 둔다면 후진국보다는 어느 정도 성장한 개도국이나 같은 선진국에서의 이민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유럽이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도 무분별한 이민 개방은 하지 않을 가망성이 높으므로 후자 쪽 개방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타 선진국을 비롯해 한국과 같은 개도국 역시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 단계에 와있다. 그렇다면, 이민은 유럽의 노령화에 대한 대안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오히려유러피언의 인식 변화를 통한 출산 장려 정책이나, 노령인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노령화가 유럽의 발전을 막는 거대한 장벽이 된다면, 그것은 유럽 뿐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에도 커다란 문제임에는 틀림 없다.
유러피언 드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력적이긴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수억의 인구가 그런 원대한 비전을 중심으로 뭉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중세에 기독교적 영구 구원의 꿈을 활성화시킨 사회적 접착제는 신앙이었고, 근대에 와서 물질적 진보를 위해 누구나 추구한 것이 이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래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는 공통된 취약성을 보호하고 세계화 의식을 갖기 위한 수단이 바로 공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