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클럽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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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클럽 독후감
전격전의 전설
-제 2장 ‘전격전’ 개념이 없는 ‘전격전’ 과 서부전역의 배경(74p ~ 109p)
영국의 군사학자 해킷 장군은 독일군의 전격전의 성공에 대해 현재 널리 인정받고 있는 “진정한 전격전은 대담하고 고도로 숙련된 그리고 참신한 전문성을 요구한다.” 라고 말했다. 이책을 읽기 전에는 ‘전격전’ 이라는 단어가 실생활에서 들어 본적이 별로 없었다. ‘전격전’ 이란 공군의 지원 하에 기갑 및 기계화 부대로 적의 제1선을 신속히 돌파하여 후방으로 깊숙이 진격함으로서 적을 양단시키고, 양단된 적 부대를 후속하는 보병부대로 하여금 각개격파 하도록 하는 전법. 제1차 세계대전 후 퓰러(T.F.C. Fuller)와 리델하트(B.H. Liddel Hart)에 의해 후티어 전술의 문제점을 분쇄하기 위한 기습적인 기동으로써 공격을 실시하며 적을 격파하는 경이적인 급속작전. 이는 속전속결의 근본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동과 기습을 최대로 이용한 전법 이다. 연합군과 독일군의 병력을 살펴보자면 독일은 영국군과 달리 ‘전문 직업군’이 아니라 의무복무 병사들이었다. 연합군인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 비해 3만 9천 명의 현역장교와 예비역 장교 9만 명 이상을 추가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0년 초, 전격전을 수행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고도로 양성된 전문 직업장교는 독일군 야전부대 내부에서 일찍부터 비밀리에 양성되고 있었다.
전격전의 결정적인 근본 요소는 화력이 아닌 기동이다. 독일은 탁약 부문 외에 다른 군수분야들은 한층 더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1940년 ‘전격전 군대’라고 불린 독일군에게 차량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전격전을 한 독일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전쟁 자원이 많고 전차, 탱크 등 많은 전쟁가능한 중장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이부분을 읽고 다시 알게 되었다. 반면에 영국 원정군은 차량 성능과 무장 면에서 최첨단 수준에 있었고 프랑스군은 수많은 민간 수송차량까지 징발해 도합 30만 대가량을 동원 할 수 있었다. 반면 독일군은 1940년 초에 겨우 12만 대의 차량만으로 공격작전 시 적의 영토까지 이어지는 병참선을 유지해야 했다. 차량이 얼마나 없었으면 할더 장군은 ‘반차량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기존 및 새로 창설되는 부대의 차량을 가차없이 제한’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40년 초 국방군의 상징은 전차와 자동차가 아닌 기병이 되었다. 차량 부족으로 인해 제 1차 세계대전때 보다 많은 270만여 기병이 육군에 편성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제 1차 세계대전보다 발전해 총이나 탱크, 전차 등 중장비를 이용해 전쟁을 하는것을 생각하고 알아 왔는다. 독일군은 차량이 없어 말을 사용했다는것이 충격적이었다.
1940년 초 독일 육군의 부대 편성 수준은 아직 현대화 적이지 못했다. 독일 국방군 내부에는 완전히 상이한 2개의 육군이 존재했다. 하나는 10개의 기갑사단과 6개의 차량화보병 사단 부류였고, 또 하나는 전통적인 육군, 즉 구식 무기로 무장한, 저급한 수준의 사단들이었다. 이 중 전자인 16개의 최정예 사단들만이 전격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던 반면, 나머지 90%의 사단들은 방어 작전은 수행할 수 있으나 전격전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는 부대들이었다. 현대적인 ‘작전술 차원의 기동전’은 기동성을 갖춘 부대만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육군의 구조는 끝이 뾰족한 강철 창에 비유할 수 있다. 창끝, 최첨단 부대들이 연합군 전선에 강력한 돌파를 감행해야 하는 첨단으로서, 지헤류니트 작전의 주역이었다. 이러한 ‘고속 기동부대’ ,즉 기갑사단과 차량화 보병사단들이 대부분의 비차량화부대들과 멀리 이격되어 상급부대의 계획과 명령을 어겨가며 급속도로 공세를 펼쳤던 것이 바로 전격전이었다. 차량화 보병사단들이 주역이 되어 전격전으하니 보병사단은 자연스럽게 기동작전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보병사단들이 수행했던 작전은 기갑사단이 점령한 지역을 접수하는 것이었다. 유명한 공수부대 지휘관인 슈투덴트 장군도 이와 관련해서 “원래 ‘전격전’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는 주어진 상황과 시간적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점차적으로 생겨난, 공중에 떠 다니는 일종의 개념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적의 규모를 부풀리고 아군 전투력을 축소하는 것은 정쟁을 선전할 때의 기본원칙이다. 독일군은 약 54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에 연합군인 프랑스군은 1939년 9월 초 총 610만 명 영국군은 직업군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며 50만 명 지원 네덜란드 군은 40만 명, 벨기에는 약 65만 명의 병력을 확보했다. 종합하면, 전역 초기에 서부전선의 독일 육군 병력은 예비군을 포함해서 도합 약 300만 명이었으며, 연합군의 지상군 병력은 약 400만 명에 달했다.
사단 수를 비교해 보자면 5월 10일 독일 육군은 157개 사단을 보유했다. 하지만 이들 중 수 개의 사단은 막 창설되었고 전투에 튑되지 않은 부대들도 많았다. 즉 전역이 개시되었을 때 93개의 사단만이 공세에 참가했다. 반면 프랑스는 117개 사단을 보유했으며 이 중 104개 사단이 북동부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 밖에 제 1기갑사단과 제52사단이 중원 전력이 대륙에 파견되었다. 또한 연합군의 작전계획의 의거에 벨기에군 22개 사단과 네덜란드군 10개 사단이 각각 전장에 투입되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볼 때 1940년 5월 독일군은 135개 사단을, 연합군은 총 151개 사단을 보유했다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포병에서는 서방국가들은 독일군에 비해 포병 전력 면에서 두 배 가까이 우세했다. 프랑스만 해도 10,700문 이상의 야포를 보유했다. 여기에 영국군 1,280문, 벨기에군 1,338문, 네덜란드군 656문의 야포를 포함하면, 연합군은 총 약 14,000문의 야포를 보유했으나, 독일 국방군은 그 절반 수준인 7,378문만을 보유했다. 전차 또한 독일군이 연합군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1940년 5월 2,439대의 전차를 보유한 독일 국방군이 두 배에 가까운 4,204대의 전차를 가진 연합군과 맞서 싸웠다. 성능에서도 월등이 우세했다. 독일군 Ⅵ형 전차는 30mm 장갑을 장착한 반면, 프랑스 샤르B 전차는 60mm, 영국군 보병전투 차량 마틸다는 80mm의 장갑을 사용했다. 어떠한 전차포와 대전차로켓으로도 파괴할 수 없었던 이 두 강력한 전차들은 독일군 병사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