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도덕교육에서의 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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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등 도덕교육에서의 공리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공리주의의 도덕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내 행위의 결과가 많은 사람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면 도덕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공리주의의 인간관과 도덕원칙이 담겨있다. 첫째로 인간 행동의 두 범주를 쾌락과 불쾌로 전제함을 알 수 있다. 이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의 기준을 쾌락에 두고 있다. 두 번째로 공리주의 도덕의 핵심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즉, 유용성의 원리(공리를 추구해야함)이다. 이때 공리주의는 나의 쾌락뿐만이 아닌 타인의 쾌락까지 계산하기 때문에 이기주의와 구분된다. 동시에 인간평등의 원리를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임을 알 수 있다. 도덕은 선의지인가 선한 결과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결과의 효용이 클수록 도덕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도덕적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에 윤리학적 상대론에 속한다.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가장 이익이 많이 돌아가는 결과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행위를 결정할 때 한 가지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에 유연성을 가진다. 이는 칸트윤리와 같은 절대론과 비교된다. 칸트는 선의지에 따라 도덕적 행동을 판단하고 항상 적용되는 도덕법칙을 제시한다. 이러한 절대론은 도덕적 판단 기준에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행동의 선택에 명료성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두 가지 이상의 도덕적 가치가 대립했을 때, 모순에 빠질 수 있고 유연성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는 도덕적 판단의 문제가 나온다. 사람들은 악당 조커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는 도시를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른다. 이 때 두 배중의 한쪽에는 보통의 시민이 탑승하고 있고 한쪽은 감옥수들이 있다. 조커는 이 두 배에 모두 폭탄을 설치해두었고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각각의 배에 상대편의 배를 폭파시키는 스위치를 주고 이것을 먼저 누르는 쪽을 살려주는 것이다. (단, 아무도 누르지 않을 때에는 두 배 모두 폭파된다.) 이 때 사람들의 주장은 두 부류로 나뉜다. 여기에서 감옥수보다 보통의 시민들이 살아남는 것이 사회전체의 효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리주의자일 것이다. 반대로 어떠한 경우에서도 생명권은 침해될 수 없고 생명권에 가치의 경중을 둘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칸트와 같은 의무론자일 것이다.
위와 같은 공리주의의 유연성은 동시에 모호성을 지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도덕에서의 유연성이라함은 사회적으로 선이라고 여겨지는 원칙의 예외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무정부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도덕적 무정부 상태란 여러 가지 도덕적인 문제가 섞여 있을 때 반드시 따라야 할 원칙이 없어서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지,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 지 판단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공리주의의 쾌락 측정문제가 그러하다. 도덕적 행동의 판단 기준이 쾌락의 총량의 측정이기 때문에 판단이 이중성을 띠는 경우가 존재한다. 벤담은 유용성의 측정기준으로 7가지(강도, 지속성, 확실성, 신속성, 다산성, 순수성, 범위)를 제시하지만 쾌락 측정의 모호성을 해결하고 있지 못하다. 정성적인 문제에 대해 수치화 할 수 있다는 접근부터가 잘못되었다. 최근 재벌 총수의 비리에 대한 특검이 진행되고 이에 대해 찬반논란이 분분하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쾌락의 측정으로 이를 판단한다고 하자. 재벌 총수의 특검으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보다 이를 통해 바로 세워지는 사회의 도덕적 규칙 정립으로 인한 이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들의 특검으로 인한 경제적인 불이익이 도덕적인 이익의 총량보다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절대적 원칙이 없고 측정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나은 결과(공리)인지 알기 어려운 것이다. 양쪽의 쾌락의 양이 비슷할 경우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쾌락의 질적 차이 없이 총량만을 계산하는 데에서 오는 문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나의 경험사례
친구가 여행을 가는데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없어서 나와 간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친구는 부모님께 연락이 오면 여행을 같이 갈 것이라고 말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때, 나는 이 부탁을 들어주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진 경험이 있다. 공리주의의 쾌락의 측정원리에 따라 계산해보면 내가 이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쾌락이 최대가 된다. 친구의 입장에서는 여행을 다녀오는 즐거움,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알면 불쾌가 되는 일을 최소화, 나의 입장에서는 한번 거짓말을 함으로 인해서 친구와의 우정을 지킬 수 있고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으로 쾌락이 최대가 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는 편이 최대의 효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부탁을 들어주어야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거짓말을 한 행위이다. 이처럼 의무론에서는 보편적인 도덕 규칙에 대해서 공리주의에서는 예외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러한 예외는 곧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우리 반 학급에서 경험한 일이다. 원칙상으로는 모든 학생들이 정규수업시간을 모두 준수하여 마쳐야하지만 여러 가지 예외를 허락하였다. 즉, 미술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조금 이른 시간에 마쳐주고 1학기 수시를 합격한 학생들은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도록 하였다. 이것이 처음에는 각 개개인의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외가 발생하여도 이를 제재할 수 없어서 교실은 다른 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처럼 유용성에 따라 예외를 하나 둘씩 인정하다보면 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3. 공리주의 원칙에 의한 도덕 교육
공리주의의 행동원칙은 현대 사회인들의 사고원칙과 매우 닮아있다. 최대다수의 쾌락을 최대화하는 것이 공리주의의 입장이라면 현대인은 불 쾌락의 총량을 줄여야한다는 소극적 공리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도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토의한 결과 조원 6명 모두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백지상태와 같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덕교육은 공리주의의 원칙으로 가르친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이건 옳은 것이므로 해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학생들의 실천을 도모할 수 없다. 최대한 도덕의 필요성과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야 되는데 이에 적당한 것이 바로 공리주의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도덕에 대해 왜? 라고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지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덕은 단순한 교화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초등학생에게 가장 필요로 한 도덕교육은 바로 인터넷 윤리문제이다. 초등학생은 왜 악성 댓글을 달까? 간단하다. 사이버공간에서도 질서가 필요하다고 악성댓글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교사들은 사이버세계로 도덕교육의 영역을 확대해야한다. 이 때 공리주의의 원칙에 연결지어 교수할 수 있다. 1차시 수업에서 악성댓글을 달아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토론해본다. 이어 악성댓글의 심각성을 깨달은 학생들이 2차시 수업에서 보편적인 인터넷윤리를 정립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은 아직 도덕개념정립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사이버세계에서의 도덕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 이후에 교육한다면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의 원칙에서 도덕교육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리주의는 유용성의 원리에서 행동의 원칙을 판단하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이 최대다수의 행복을 가져온다면 사회의 기본 규칙을 어기는 일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교통규칙을 지켜야하는 것은 그것을 지켰을 때,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적한 시골길의 신호등이 다수의 사람들을 불편하게만 한다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공리주의는 정당화한다. 그러나 아직 기본 도덕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러한 교육을 시킨다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공리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은 선의지와 결합하여 해결할 수 있다. 즉 교육을 통해 선한의지를 심어주어 이를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초등도덕교육은 극단적 공리주의의 입장만으로는 교수될 수 없으므로 도덕적 의무론과의 적절한 융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