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페미니즘 여성의 역사 우상숭배 예술과 문학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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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와 페미니즘 여성의 역사 우상숭배 예술과 문학의 표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문학과 예술은 여성의 이미지를 가장 크게 변형시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19세기에는 이러한 문학 또는 예술을 통해서 사람을 현혹하는 이미지들이 가진 위험한 힘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넘쳐났는데, 이미지는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미지들은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이와 동시에 대상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말하고 있다.
사회가 여성들에게 강요해 온 여성상을 이미지, 그리고 그러한 모델로 인해 늘 생명력을 지녀야 할 남녀 관계가 하나의 표상으로 고정되었다. 이러한 표상의 지배력은 너무도 억압적이어서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이미지는 하나의 사실로 굳어지고 만다. 더구나 이러한 모델을 만들어 내어 여성을 찬양하고 숭배했던 목적이 실은 여성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여성을 남성에게 복종시키는 데 있었다는 것은 곧 여성을 백안시한 행위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성모 마리아인데, 성모 마리아는 여성은 모성이 넘치는 자태를 드러낼 때야 말로 가장 숭고한 인격이 발현됨을 얘기하고 있다. 이리하여 여성은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의 최고 존재로 승격되기는 했으나 이러한 복위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사실 가톨릭 측의 마리아 숭배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겠다는 욕구의 반영이자 세속과의 타협을 거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성모라는 상징적인 여성은 권력을 놓고 교회와 세속 국가 간에 벌어졌던 싸움에서 일종의 인질이자 무기였던 셈이다. 그 결과는 성모라는 여성상으로 인해 현실의 여성들은 현실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여성 문제”를 실제적이고 냉정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했고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효과만 있었을뿐, 여성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침묵하는 우상이지 자기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존재였다.
문학은 사회적 상상력에 영향을 미쳤지만 일단 문학 본래의 힘을 의식하고서부터는 삶에 등을 돌려버린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는 이 세계에 움직임을 도입하는 행위였다. 글쓰기는 응당 남성만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은 갈수록 내부로 추방되었으며, 사랑의 대상이 된 여성은 늘 상상력과 결부되어 온갖 형태의 주술과 변신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문학은 거울이라는 역할도 해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혹은 일부 사람들로서는 가능한 감추어 두고 싶었을 그런 진실들을 넌지시 비춘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토록 여성을 이상화 한 데에도 이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성의 욕망은 집요하며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여성의 자유와 이러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여성들이 수도 없이 부닥쳐야 했던 암초들을 공개하는 일은 곧 투명함과 공감과 애정이 담긴 공간을 활짝 열어제치는 일로 이 공간에선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자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문학의 이러한 개입에 대해 사회는 진부한 방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별로 위력을 발취할 수는 없었다. 19세기를 군림했던 가상의 여성상으로 인해 실제 여성들이 많은 불행을 당해야 했다.
오페라와 희곡과 같은 무대에서는 남성의 유혹에 넘어간 순진무구한 여성들 아니면 정반대로 남성들을 꼬드겨 파멸시키는 요부들처럼 늘 순종적인 이미지 또는 경우에 따라서 소름끼치는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 이 이미지들은 순전히 남성들의 환상의 산물이었다. 바로 남성의 욕망에 맞추어 짜낸 얘기들인 것이다.
상상에 의해 창조된 여성의 우월성
여성이 삶의 무수한 개연성과 구체적인 상황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라는 최고천에 거하게 된 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루소덕분이었다. 이 철학자는 “신엘로이즈” 통해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에 거꾸로 자기가 지배당하고 있음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그에 따른 고통에서 벗어나려하지 않았다. 루소에게 여성이란 본질적으로 하나의 이미지였고, 여성은 마치 자석처럼 남성의 에너지를 끌어 당기거나 전기 쇼크를 주듯 남성의 에너지를 자극시키기도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사회 병폐를 유발시키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사회의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신엘로이즈”는 당대의 지배적인 풍조와는 정반대로 인간의 삶과 행복을 위해 여성이 떠맡고 있는 정신적인 임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도록 해주었지만, 동시에 당대는 물론이고 20세기의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늘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환상들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은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의 타자성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었다. 여성의 타자성이라는 이 개념은 순전히 남성들에 의해 고안된 발명품이었기 때문에 1세기 전에 나타났던 낭만주의 환상들이 되살아나곤 했다. 이들은 여성의 진정한 본성을 밝혀낼 수 있는 주체는 오직 남성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게임이었으며, 거기서 여성은 잘 해야 게임의 구실이었거나 아니면 대개는 늘 희생양이었다. 시, 소설, 신학, 세속에서 이들이 추종했던 이들 역시 남성에게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여성의 이미지를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악몽을 꾸는 듯했다. 그리고 수 많은 화가들이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의 이미지들을 화포에 되살려내고 있었다. 이러한 예술 작품과 지적 생산의 밑바탕에는 늘 이 세계를 성에 따라 구분하는 하나의 표상이 깔려 있었지만, 실제의 목적은 인간의 심리를 불안케 하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갖는 이질감을 제어하는 데 있었다.
숙명
여성들에게도 부분적인 권한이 주어지기는 했으나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혹은 정치적인 것이든 모든 야심을 포기한다는 계약에 여성들이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야만 했다.
문학에서는 더 직접적인 전장을 보였다. 18세기 말엽만 해도 문학은 여성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는 하나의 무기였지만, 19세기로 들어서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긴장들이 발생했으며, 현상유지마저 미심쩍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19세기엔 “스타엘 부인”과 같은 사람은 문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삶은 마치 “인도의 천민”처럼 비참하다는 고뇌에 찬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즉, 금기를 깬 여성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저주를 받아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 후 여성들이 쓴 소설에는 늘 환멸과 행복의 파산이 주된 주제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19세기 후반의 수십 년 사이에 여성들의 가혹한 숙명을 드러내는 광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는데, 사실주의 회화 또한 이러한 광경을 묘사했다. 회화만이 아니라 유럽 대륙의 문학이 모든 사회 계급을 묘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사회의 금기들마저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가톨릭 교회였는데, 당시의 가톨릭 교회는 권력욕과 여성 문제에 대한 몰이해로 수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부부간의 진정한 도덕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알려 하기보다는 여전히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의식으로 부부 관계를 묶어두려 했다.
이 시기 소설의 다른 면으로는 여성들의 무수한 열망에 관한 얘기로 가득 차 있었다. 흔히 여성형, 현제 시제로 기술되었던 열망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욕구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려는 욕망으로 나타났고, 문학은 육체의 외침을 반향시키면서도 여성들의 대변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19세기 소설이 동시대의 어떤 예술 장르보다 활기에 넘쳤다는 점은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또 그렇기에 행복을 추구했던 여성들의 열망은 물론이고 그들이 부닥쳐야 했던 무수한 난관까지도 가장 잘 조명해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