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유교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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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교 유교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합 목적성(合 目的性)의 인도.유럽 언어의 원형인 삼스크르탐(Samskrtam)으로 파라마타(paramata)로서 여성명사(女性名詞)이다.
삼스크리탐(Samskrtam)으로 합 목적성이란 말인 ‘파라마타(Paramata)’는 ‘궁극적인, 절대적인, 초월적인 뜻을 지닌 파라(Para) ‘마(Ma)와 타(ta) 어머님 같은 최고의 합목적성을 지닌 진리가 표현되다’의 의미를 지닌 합성어(合成語)인 것이다.
즉, 합 목적성은 완전하고, 궁극적(Ultimate, Last)이고 절대적인 최고의 목적을 가리킨다. 합 목적성은 중간목적이 아닌 마지막, 절대적인 최고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리키는 것이다. 보다 높은 것의 수단이 되면서 동시에 보다 낮은 것의 목적이 되는 중간 목적이 아닌 것이다.
리그.베다, 시마베다. 야쥬르베다 그리고 아타르바.베다 등에 이미 최고의 합목적성의 의미가 잉태되어 있는 것이며 이것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구현, 실현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합 목적성을 추구하며 생(生)을 영위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 다섯번째 베다로 불리우는 인류가 지닌 최고의 서사시인 ‘...이티-하사...(..Iti-Hasa..., ...그러므로 존재하나니...)’인 것이다. 이것은 해(Solar) 민족(Race)과 달(Lunar) 민족(Race)과의 전쟁의 이야기이며 이 전쟁을 통해 인간 삶의 합 목적성과 보편성, 특수성 등이 논의되고, 삶의 참다운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합 목적성을 통해 우리의 존재는 그 참다운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2. 본론
1) 합 목적성(Paramata)
(1) 발견
합 목적성의 발견은 부정적(neti, not this)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결코 긍정적인 방법으로는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쓰이는 철학적, 인식론적(認識論的), 논리적인 방법은 직관(直觀)이 인도의 타당한 열개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에 우선한다.
인류 언어학사(言語學史)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추정되어지는 인도 유럽 언어의 원형들인 삼스크리탐(Samskrtam)과 타밀(Tamil)어로 표현되는 ‘소리 뜻글자’가 근원적으로 인도 철학에 있어서 합 목적성(Paramata)을 발견하는 논리적, 인식론적 방법이다.
우리 인간이 지닌 언어는 그 유한성과 제한성이 최고의 완전성을 지닌 합 목적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나타나는 것이다. 완전성을 지닌 합 목적성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능과 능력을 지닌 언어와 인간은 존재치 않는 것이다.
여기에 인도 철학에서 최고 최대의 철학적 언어로서 ‘침묵(Mauna, Silence)’의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며 그 확고한 위치를 합 목적성과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비트겐스타인(Wittgenstein) 역시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라고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시간과 공간 안에 놓여 있는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뛰어넘은 밖에 놓여 있다”라고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철학에 있어서 ‘합 목적성(Paramata)’가 ‘초월적인 진리가 표현된 것’이란 의미가 우리 삶과 항상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란 너무나 많은 제한성을 지니고 있어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순간 순간 만나는 사물들에 관해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비트겐스타인(Wittgenstein) 역시 “진실로 표현되어 질 수 없는 사물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보여 줄 뿐이다. 그들은 신비롭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삶의 신비로움이 ‘합목적성(Paramata)’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부정되어 질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가장 완전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합 목적성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완전을 향한 인간의 삶의 과정이 결코 끝날 수 없는 창조적인 삶의 역정이 되는 것이고 인간 삶의 창조적인 논리(The Logic of creation)가 잉태되어 실현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창조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순간에 잉태되는 것이며, 여기에 창조적인 긍정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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